미국에서 서른이여도 성장하는 법
네가 있는 현실에서 나를 알게 되었다.
영어로 홀로서기
미국에 있는 동안 홀로 서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홀로 서는 법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모두들 그 친구에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부탁하는 상황이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금토일에는 모두들 버팔로 시내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항공편으로 인해 모두들 지쳐 있었다. 항공사 사이트가 아닌 아고다, 트립닷컴 등의 여행사를 통해 예매한 경우, 비행기 지연 시간은 종잡을 수 없었다. 8시간이 되기도 하고 결국 숙박비를 날리는 편이 낫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항공사에 항의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다들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자를 찾아 나서곤 하였는데, 그 대상이 나의 동기였다.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의 모습에 질려버린 동기는 무척 지쳐 보였다. 그도 그런 것이 인솔자 또한 미국에는 처음 와본다면서 한 번이라도 미국에 와본 동기에게 의지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곤 했다. 미국에 한 번도 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인솔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솔자에게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기도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로 무언가 해주길 부탁하는 일은 오히려 내가 부끄럽게 느껴져 무엇이든 스스로 하기에 이르렀다. 직접 병원 탐방과 의학 전시관 예약을 모두 네 힘으로 해냈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 전화로 외국인과 직접 통화하며 예약 성공을 이룬 난 '나도 할 수 있다'는 값진 결과로 이룬 성공이었다. 뒤이어 동기는 내게 '나에게 부탁하지'라고 말했지만 네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가능한 한 나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병원 탐방은 아쉽게도 미국 내 규제와 환자 개인 프라이버시로 인하여 예약이 취소되었지만 버팔로 내 사우스 캠퍼스에 위치한 의학 도서관은 탐방이 가능했다. 여기도 나의 도전과제는 주어졌다. 외국인과 프리토킹 시간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친절한 사서님께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천천히 말씀해 주셨고, 호응도 잘해주셨다. 그 덕분에 무사히 탐방을 마칠 수 있었다. 네 자신이 정말 기특하게 느껴졌다.
'나이'로 나를 규정짓지 말기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정해진 프로그램 일정 외에는 많지 않았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들 어찌나 체력이 좋던지 밤이 샐 정도로 술을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 프로그램에서조차도 네가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되었다. 연장자가 된 것도 서러웠는데, 세대가 다르다 보니 띠동갑인 동생?! 들도 무척이나 나를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말을 놓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네가 첫 번째로 미국에서 나를 제대로 알게 된 '나이'였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난 네가 정말로 헛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어느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후회는 덜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만큼은 말을 놓고 지내자는 룰이 있었어도 네 스스로가 나이가 많다고 인식하고 선을 긋는 순간 동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나이'로서 선을 긋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네 스스로를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또, 나를 불러주는 이 없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말을 놓으라고 말하며, 밝은 미소로 화답하곤 하였다. 물론, 내가 술을 마실 줄 안다면 더욱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있어서 술로서 친해지는 일은 없었다.
러닝을 통한 외로움 극복하기
비행기 지연으로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남겨지게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떠난 나머지 일행들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인스타에서 보게 된 동기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그렇지 못한 나의 처지가 자연스레 비교가 될 법도 했지만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부럽다기보다는 귀찮아졌다. 하루하루 한국에 어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한국에서도 혼자 있는 일이 많았는데, 미국에서 혼자 있는 건 더없이 외로웠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을 일부러 피한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다 보니 실물이 난 모양이다. 사람들과 멀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 있는 일이 많아졌다. 홀로 다니는 일은 외로운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데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던 건 참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살면서 나를 돌보거나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많지 않았던 요즘, 오히려 타인을 더 많이 의식하고 지냈던 시절이 덧없게 느껴졌다. 남보다는 '나'의 초점을 맞춰 미국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러닝을 통해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러닝 머신에서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뛸 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러닝은 숨이 찰 정도로 고된 일이지만 뛰고 난 후에 오는 상쾌함과 성취감은 이룰 말할 수 없이 좋다. 러닝 동호회는 아니지만 함께 러닝 머신에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된 미국에서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낯선 땅에서 느낀 이방인이라는 외로움은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삶에서 가끔씩 '혼자'라는 외로운 순간이 밀려올 때, 외로움을 그저 외로움으로 놔두는 것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탈바꿈시킨다면 어제보다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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