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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o Dec 29. 2024

먹먹한 겨울

맥베스가 남긴 짙은 생각들


”잊을 건 잊어버리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잊지 않겠습니다 “

이 한 마디가 오늘 하루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가의 의도와 올해를 돌아보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광화문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과 손에 든 팻말에는 분노와 간절함이 엇갈렸다. 각자의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표현 방식이 타인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갈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Pause’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멈추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다. 또한, 스페이스바처럼 삶에도 간격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지금 세상에 필요한 건 그러한 간격을 두고 문제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공연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역사 안은 소란스러웠다. 안내 방송과 발소리 사람들의 작은 한숨 소리 등이 뒤섞였다. 줄을 서던 중,  멀리서 서로의 목덜미를 붙잡아가며 입에도 참아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을 난무하는 중년 어르신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더욱더 먹먹해졌다. 그 장면을 본 외국인 교환학생들은 고개를 내신 저어가며 시선을 바닥 아래로 떨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깊은 한숨을 뒤로 한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 안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스하기도 했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운전을 하기 전까지 대중교통이 나의 기동력의 전부였다. 호선마다 다른 사람의 냄새가 났고 그때마다 그 자리에 앉던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눈에 담았다. 오늘은 평상시와 달리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은 몹시 지쳐있었고 마음 한편에 말 못 할 사정들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러한 사정들은 각자가 해결되길 바라고 술술 일이 잘 풀리는 그런 일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 욕망‘이 떠올랐다.

맥베스의 욕망은 단순히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아닌,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반영하는 듯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들은 도덕적 경계를 결국 넘어서면서 그와 레이디 맥베스의 불안은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본능과 본질에 대해 분명 일반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등 인간관계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를 기피했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고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단계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의식주가 만족되지 못하면 이것만큼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대중들의 욕구에 있어서 가장 불충족한 것은 ’ 안전에 대한 ‘ 욕구가 아닐까 싶다. 고개를 떨구며 바닥 아래로 시선을 향한 외국인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가 난생처음 내심 부럽게 느껴졌다. 국내외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에서 나 또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귀중품과 식료품 등을 보관해 두는 가방을 마련했다. 불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선배들의 취업 소식 또한 들려오지 않았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주인공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계속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욕구를 따랐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기 전까지 그를 자극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었다. ’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고작 변방의 영주라니 ‘ 이 말을 생각해 보면 바랐던 것이 많았던 만큼 실망이 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목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맥베스는 더 크고 위험한 야망을 꿈꾸고 실행에 옮겼지만 모든 것은 그에게 불행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방어적인 심리 태도들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매일같이 느끼고 오늘도 확신을 얻었다.


만약, 네가 레이디 맥베스에게 ’ 고작‘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네 스스로 ’이만큼 해낸 것도 정말 잘한 일이야‘라고 하며 만족할 줄 알고 또한, 누군가를 해하기 전에 해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지 차분히 생각하고 잠시 멈춘 다음에 윤리적으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분명한 책임과 인정 그리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꼭 왕이 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히 행복한 세상을 즐길 수 있었으리라.


결국, 선택 이전에 필요한 건 멈추는 시간이었다. 그 멈춤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덜 후회할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올바른 선택과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이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보다 많은 책을 읽거나 오피니언 리더, 멘토 등을 찾아가거나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선택은 나의 몫이며 이를 책임져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잠시 나로부터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건 어떨지.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맥베스가 앉던 의자를 마주하였다.

분명,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오늘 막 바로 쓰인 생생한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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