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A-B-A-G-F#-G
노력만으로는 안 되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 스승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즐겨야 하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스승님의 말이 가슴에 와닿긴 했지만, ‘즐긴다’는 말을 단순히 ‘재미있게, 위트 있고, 가볍게’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재미있게 접근하려고 애썼다. 작품에도 이를 반영해 보려 했지만 즐길 수 없었다. 창작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고, 어느덧 서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장이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시절, TV 속에서만 보던 그녀를 따라 바이올린을 배워 중학교 때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나에겐 우상이었던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저하지 않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그녀의 연주는 내한 공연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녀의 연주는 내게 선물이었다. ‘로맨틱한 선물’이었다. 연주를 듣는 내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옆자리에 앉은 관객들도 나처럼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공연이 끝난 후, 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사라장의 연주는 다른 연주자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즐길 줄 아는 로맨틱한 연주자’였다. 스승님의 말씀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다시 해석한 ‘즐긴다’는 말은 사라장의 연주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기반으로 여유를 갖는 것이다. 사라장도 처음부터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4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9살 때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데뷔하기까지, 그녀의 경력 35년 동안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이러한 보이지 않은 그녀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나도 그녀도 이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나도 독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게 될 수 있을까
어느덧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 지도 6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텅 빈 화면을 보며 두서없이 써 내려간 문장이 가끔은 부끄럽고 자신 없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아직도 ‘즐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통해 함께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따르는 법. 그러나 그 고통을 고통으로만 여기지 않고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분명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뵙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나은 모습,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작품에 대한 의견은 언제든 메일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엄지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