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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효 작가 Nov 29. 2021

속까지 든든하게, 겨울 백반기행

12월 첫째 주 남도여행

어느새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찾아왔다. 부쩍 추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다가도 괜스레 마음이 허전해지는 계절이다. 이럴 때일수록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허해진 마음도 달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지 않나. 금강산도 식후경! 올 겨울 여행은 배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자.


든든한 겨울나기를 위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고흥이다.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곳, 우주도시 나로도는 청정 바다를 품은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맛난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겨울 나로도 밥상을 책임지는 삼총사는 따로 있다.


삼총사의 맏이는 나로도 삼치다. 나로도항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삼치 파시가 열릴 정도로 삼치 잡이가 성행했던 곳이다. 1960~1970년대까지도 항구를 드나드는 삼치 잡이 배들이 2백여 척이 넘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워낙 귀한 생선이라서 잡는 족족 ‘대일무역선’에 실려 일본으로 전량이 수출되는 바람에 제철에도 국내 생선가게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생선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삼치 하면 나로도를 최고로 쳐 준다. 나로도 대삼치가 가장 맛있을 때가 딱 지금이다. 10월부터 살에 기름이 오르기 시작한 삼치는 12~1월이 가장 맛있다. 삼치라는 이름은 ‘자산어보’에서 유래했는데 ‘세 가지 맛이 있고, 세 배 크며, 속도가 세 배 빠르다’고 기록돼 있다.

< 겨울철 고흥 바다에서 잡은  삼치 >


겨울 삼치는 살집이 단단하고 단맛이 돈다. 이른바 무 썰기 시전으로 두툼하게 썰은 삼치회를 기름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으면 기름지고 고소한 삼치회 맛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삼치회를 먹는 방식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고흥 사람들은 두툼한 돌김 위에 큼직한 삼치회 한 점을 올린 뒤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다. 완도 청산도에서는 묵은지를 올려서 먹고 여수에서는 양념된장과 갓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해남 땅끝마을에서는 김 대신 봄동에 삼치와 묵은지를 올려서 먹는데 이를 삼치삼합이라고 부른다. 나로도에서는 삼치회 뿐만 아니라 미역국에 삼치를 넣어 끓이는 삼치미역국과 삼치의 껍질을 벗겨 순살로만 만드는 삼치어죽도 별미다.

    

고흥의 겨울밥상을 책임지는 두 번째 맛은 녹동항에 있다. 고흥을 대표하는 포구인 녹동항은 근해에서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이 모이는 큰 어시장이 열린다. 고흥 끝자락에 위치해 있지만 도로가 잘 연결되어 있어서 찾아가기 쉽고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다리가 생기면서 언제나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고흥의 대표 명소다.

 

< 고흥 붕장어탕 >



녹동항의 겨울 밥상을 책임지는 주인공은 붕장어다. ‘붕장어’는 지방 함량이 몸의 약 10%로 탕을 끓여 먹기에 적당하다. 고흥의 붕장어탕은 여수나 통영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지역에서는 국물이 약간 맑은 편이지만 고흥의 붕장어탕은 오히려 진하고 구수하다. 국물을 낼 때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뿌리기 때문이다. 구수한 된장과 붕장어의 고소함이 어울려 진득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빚어낸다. 여기에 후춧가루를 뿌리면 장어탕 맛이 훨씬 풍성해진다. 아침 해장용으로 그만이다.
    



삼치와 붕장어 다음으로 고흥 밥상을 책임지는 삼총사는 황가오리다. 배 부분이 황금빛을 띠고 있어서 황가오리라고 불리는데 청정바다로 소문난 고흥과 해남 바다에서 소량만 잡히는 귀한 생선이다. 황가오리는 ‘가짜 홍어’라고 부를 정도로 생김새부터 먹는 방법까지 비슷하다. 차지고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특별해서 한번 맛보면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홍어나 간재미가 삭혀서 톡 쏘는 맛으로 먹는다면 황가오리는 싱싱할 때 차진 맛으로 먹는다. 황가오리 회를 시키면 날갯살과 뱃살을 섞은 회와 애(간)가 함께 나온다. 황가오리 애는 신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부위로 남도 식객들 사이에서 애를 먹어야 황가오리 한 마리 다 먹는 것과 같다고 칭찬할 정도다. 홍어 애와 달리 비린내가 없고 고소해서 푸아그라 같은 맛이 난다.

<흡사 소고기 차돌박이처럼 생긴 '황가오리회'>


황가오리회는 붉은 반점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데 그 모양이 꼭 소고기 차돌박이 같기도 하다. 식감은 차지고 쫀득하다. 특히 날개 쪽은 씹는 맛이 일품이다. 깻잎장아찌에 밥 한 숟가락을 올리고 그 위에 황가오리 회 한 점을 올려서 먹으면 금세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다. 워낙 귀한 몸이니 기회가 될 때 꼭 맛보는 것이 좋다.


<완도 노화도 전복 양식장>

고흥 바다만큼 맛있는 겨울 밥상이 완도에서도 기다린다. 바다 양식장이 넓게 펼쳐진 노화도는 전복과 비단가리비가 유명하다. 껍데기 말고는 버릴 게 없다는 전복은 겨울 밥상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최상의 식재료다. 먼저 전복에서 발라낸 내장으로 고소한 전복 내장밥을 짓고 여기에 전복 살과 비단가리비를 함께 다져서 만든 전복스테이크를 곁들이면 보약 밥상이 따로 없다.


     

완도여행의 시작은 단연 완도타워부터 시작된다. 완도타워까지 가는 길은 찻길과 산책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최근 모노레일과 ‘완도타워스카이(짚라인)’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다. 모노레일은 완도 수산물시장이 있는 중앙광장에서 완도타워가 있는 다도해일출공원까지 459m 구간을 약 7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사방이 탁 트인 모노레일을 타고 산책하듯 천천히 완도 읍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좀 더 짜릿한 경험을 원한다면 ’완도타워스카이(짚라인)‘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완도타워>

해발 132m의 산 위에 세워진 완도타워는 높이 76m의 전망대로 인근 다도해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완도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360도 파노라마 관람이 가능하며 날이 좋을 때는 멀리 제주도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특히 타워 전망대에서는 특별한 완도 먹거리를 맛 볼 수 있다. 고소한 빵 안에 완도 전복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전복빵은 맛과 영양은 물론 보는 즐거움까지 쏠쏠한 완도의 별미다.


<  전복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 간 '전복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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