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 버렸을까?
Feb 02, 2023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변호사한테 이메일로 요청받은 자료를 찾기 위해 예전의 아주 예전의 추억들을 들춰내고 있었다. 전남편에게 받았던 사랑한다던 달콤한 이메일, 그가 보내 주었던 화목해 보이는 예전 우리 세 식구의 가족사진, 그리고 딸아이의 해맑은 어릴 적 아기 모습들... 우리의 모든 과거가 거기에 다 담겨 있었다. 쥐어짜고 쥐어짜서 이제는 메말라 버린, 그래서 한 방울도 나올 것 같지 않던 눈물이 갑자기 홍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대체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래도 나름 어떻게든 안 맞춰지는 퍼즐을 억지로 라도 꾸역꾸역 맞추려고 노력을 하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조각조각 보이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울컥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싸우지는 않았구나'.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다시 잘해보자는 손을 건넨 적도 있었구나'...'그렇다면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시간과 기록을 들춰보아도 여기서부터가 잘못된 지점이었을 거라는 확신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그 대답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 대답을 알게 된다면, 나는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갑자기 수만 가지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랬다. 3개월 전만 해도, 내가 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냈던 그 순간 까지도, 나는 사실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감정에 휩싸여 또는 내 자존심만을 앞세워 이 큰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은 아닐까. 울며불며 다시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지내고 싶다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누가 내 마음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 같았고 더 많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대체 얼마나 잘난 존재이길래 이렇게 조그맣고 소중한 내 아이의 마음까지 아프게 하면서 까지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일까... 죄책감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 나는 이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찢기고 더 많이 울었고 더 많이 상처를 받았다. 그도 그랬을까? 이혼이라는 과정이 이렇게 까지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해지는 과정일지... 미처 몰랐다.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잡아 내려고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온갖 폭언과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고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을 하는 행동은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오히려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아니,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비가 온 뒤에 굳어진 땅처럼 나의 생각은 더 확실해졌고 더 명확해졌다. '내가 한 결정은 역시 맞았고, 그리고 난 이 결정에 후회 없이 살겠노라고'... 백번 천 번을 두들겨 맞고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비록 지금 나 자신이 당장 내 두 발로 설 힘이 없다고 할지언정,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고불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고 있어도 딱히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이외에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 힘 있게 내 인생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한 번 더 믿고 내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