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빠르다. 쏘아놓은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가버린 시간들.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고, 2세를 가져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한다. 이제는 모두 어른이 할 만한 고민을 하고 사는 요즘, 나는 무엇이든 알아서 척척 잘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군분투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문득 어린시절의 내가 궁금해졌다. 가만 있어보자. 난 어릴 때부터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난 언제부터 이런 마음으로 살아갔던걸까? 내가 어른이 되어서 이런 마음이 드는걸까? 아님 나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라나게 됐던걸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는 엄마가 가정주부로 집에 계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부터는 부모님이 맞벌이로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집안일을 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했을 때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2살 때 써놓은 일기장을 들춰보니 어린시절의 내가 집안일을 걱정하고 가계의 경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2박 3일 수련회 일정이 나왔는데 나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한테 말하고 학교에도 말했었는데 엄마는 그래도 수련회 비용을 주셨고 그렇게 수련회에 다녀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IMF라고 TV에서 떠들어대는 상황에서 우리집은 IMF와 무관하게 원래부터 경제력이 그 정도였던 것 같지만, 난 더더욱 우리집이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위로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다. 학군도 같았기에 필요한 학용품도 모두 같았다. 오빠가 쓰던 크레파스, 오빠가 쓰던 서예용품, 오빠가 쓰던 미술도구, 오빠가 쓰던 리코더.. 모두 오빠 책상 세 번째 서랍에 들어있던 한 번 사용한 학용품은 모두 다 내 차지가 되었다. 그것으로 미술대회도 나가고, 음악시험도 보고, 과학숙제도 했다. 매번 상장을 받았지만 모두 '우수상'이었지 '최우수상'이 내 차지가 된 적은 없었다. 난 항상 열심히 했지만 2~3등 그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아무리 열심히 페달을 굴려도 일정속도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내가 최우수상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모두 낡은 학용품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셀 수 없는 우수상 상장을 받았지만 왠지 공허한 이유는 정답을 알 수 없었던 공허함 때문이었을까.
반에서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했지만 전교회장, 부회장 출마는 나 스스로 거절했다. 왠지 당선이 되면 돈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공식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막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도전하지 않는 삶을 학습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난 어린시절부터 칭찬받는 아이였다. 엄마 속을 썩이기는 커녕 우리 딸은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쳐. 집안일도 잘 해. 항상 상도 많이 받아와. 학원 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공부를 잘 하네. 그런 소리를 듣고 성장하며 나는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이 느껴졌다.
'새 학용품이 없어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어, 상을 받을 정도로 잘 해내야 해'
'엄마 아빠가 없어도 난 집안일을 잘 해놓을거야'
'난 착한 딸이니까 징징거리지 말고 내가 할 일을 잘 해야 해'
보통 K장녀들이 착한아이컴플렉스에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난 막내였지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자라난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올라갈 때 교복값을 아낀다고 친구 언니의 3년 입은 교복을 받아와서 줄여입는다고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어린시절의 나는 왜 그랬을까? 교복 마이 팔 부분에 보풀이 난 그 옷을 내 몸에 맞게 줄여 입으며 '내가 이렇게 하면 교복값을 아끼니 잘 한거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새 교복'을 처음 입어볼 수 있었다.
누구도 어린시절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난 스스로 그런 삶을 살았다. 근검절약, 징징거리면 안돼, 내 할일은 스스로 해야돼, 공부도 잘해야지, 학원 다니지 않아도 공부 잘 할 수 있어. 부모님께 나의 힘든 점을 내색하지 않아야 했고 부모님이 힘드시니까 나는 더 의젓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징징거리거나 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말 어릴 때부터 난 그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힘든 상황인지 슬픈 상황인지 슬퍼도 되는건지 힘들어도 되는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흔히들 힘들 때 '비빌언덕'하나 쯤은 갖고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 비빌언덕은 어디였을까. 무엇이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맞는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을 맞닥들였을 때 난 때때로 당황스럽다.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크나큰 기둥이 되어줄 그 무엇 하나가 존재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도 그냥 모든 것을 놓아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징징거리고 싶다. 발을 동동 구르며 떼쓰고 싶다. 그냥 그렇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비빌언덕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