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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0. 2023

환대와 작별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5-2] 경계선



  경계선 境界線 (지경 경, 지경 계, 줄 선)

  1. 경계가 되는 선.     


  경계선을 두고 근소한 차이로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들이 있다.

  몇 가지 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은 ‘0도’라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얼음물이 되기도, 흐르는 물이 되기도 한다. ‘100도’라는 경계선을 두고는, 끓는 물이 되기도, 따뜻한 물이 되기도 한다. 100도를 넘으면 더 이상 따뜻한 물, 뜨거운 물 정도가 아니라 끓는 물이 되니 말이다. 

  세계 지도를 펼치면, 많은 국가들이 경계선으로 영토를 구분한다. 한 발자국 차이로 미국에 서 있을 수도 있고, 캐나다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남한과 북한도 1945년에 그어진 38선을 두고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다.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물리적으로 서로 붙어 있지만, 의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탄생과 죽음]

- 환대와 작별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      


  나의 부족한 기억력을 도와주는 오른팔, 달력이 있다. 휴대폰 캘린더 기능을 애용한다. 구글(Google)이나 삼성계정과도 연동되어, 핸드폰을 바꿔도 한 번 저장한 일정이 없어지지 않는다.      


  올해 9월 초,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리고 1년 후인 2024년 9월 5일 캘린더에 ‘지영이 아버지 기일’이라고 일정을 저장했다. 내년 이 날짜가 다가오면 울적해할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어서였다. 

  또 다른 친구 정희에게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번의 유산 끝에 다시 임신한 친구였다. 몸도 마음도 아팠을 텐데 씩씩하게 이겨내는 친구의 모습에 내 마음은 더 짠하기만 했다. 고생한 친구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또다시 1년 후로 캘린더를 넘겨, 2024년 9월 15일, ‘정희 딸 사랑이 돌’이라고 기록했다. 

  아직 아무런 계획이나 일정이 없는 1년 후인, 2024년의 캘린더에는 덩그러니 단 두 개의 일정만 저장되어 있었다. 친구들 관련된 일정은 분홍색으로 표시하는데, 텅 빈 백지 달력에 분홍색 점 두 개가 있으니 더 커 보였다. 친구 아버지의 기일과, 또 다른 친구의 아기 출생. 만감이 교차했다. 갑작스레 떠나가신 아버지, 엄마가 된 친구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아기.      


  구청이나 행정복지센터에 갔다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혼인신고 하러 구청을 방문했다. ‘한 번 혼인신고서를 접수하면 절대 취소하거나 회수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고, 바로 옆에 이혼신청 하는 접수대가 있었다. 그 사이에는 얇은 유리 칸막이 하나뿐 이였다. 또 한 번은, 행정복지센터에 갔는데, 출생신고서 서식과 사망신고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칸막이 하나를 두고 혼인과 이혼, 출생과 사망이 나란히 있는 것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장례식에 다녀온 후, 한 달이 지나 지영이를 다시 만났다. 지영이네서 하루 자기로 했다. 지영이는 ‘유부녀가 왜 자꾸 외박을 하려고 해’하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클 것 같아 괜히 그 옆에 알짱대며 온기를 나눠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지영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느낀 것들이나 생각했던 것들에 관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입을 떼는 것조차 아픔이기에 마음속에 꽁꽁 묻어두기만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에 덧붙여 나와 친구들은 할머니와의 이별, 조력을 통한 존엄사, 나이 듦 등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과거 우리가 겪었던 경험들을 꺼내놓다가, 이내 우리는 앞으로의 하루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生)과 사(死) 사이의 경계선을 두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온다. 새로 오는 이들을 환대하고, 가는 이들에게 작별하고, 남겨진 이들은 기존의 모양대로 또는 조금은 달라진 관점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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