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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Oct 20. 2023

가르는 데 쓸 수도, 연결하는 데에 쓸 수도

[5-1] 직선




  선은 연결하기도 하지만 가르기도 한다. 둘 사이에 선을 나란히 그으면 서로 연결되지만, 그 중간에 수직으로 선을 그으면 그 둘을 갈라놓는다. 선 하나에 따라 순식간에 분리되기도 하는 것이다. 선을 어떤 방향으로 긋느냐, 어떤 목적으로 긋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한 끗 차이인 것 같은데, 그 의미는 크다. 


  학창 시절, 책상 한가운데 직선을 긋고 ‘이 선 넘어오면 다 내 거다’하면 금세 경계선이 된다. 

  “내 쪽으로 지우개 넘어왔으니까, 이제부터 내 거다.”

  선 하나 그었을 뿐인데, 내 땅, 네 땅이 생긴다. 

  학교 체육시간에 종종 피구를 했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흙으로 된 운동장에 물을 부어 네모반듯한 선을 그으면 피구 경기장이 뚝딱 만들어진다. 선을 중간에 그어 두 편으로 나눈다. 내 편, 네 편이 생긴다. 공을 던져 상대편을 맞혀 경기장 밖으로 모두 내보내면 된다. 그 선 하나로 없던 팀워크도 발휘된다.   

   

  이렇게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일은, 사람 사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성별, 인종, 종교, 성적 취향,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등에 따라 수직선을 그어버린다. 선을 그어버리면 삽시간에 편이 갈린다. 우리 팀, 상대편이 되어 차별과 혐오가 일어나기도 한다.      


  ‘MZ세대’라는 단어를 봐도,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요즘 애들은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금방 그만둬버려’라고 단편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사회성이 낮고 자유분방한 사람을 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싶을 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특이하게, 이러한 현상은 시대마다 있어왔다. 50년대에 태어난 나의 부모님은 당시에 비교적 더 보수적인 그들의 부모 세대와의 충돌의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의 세대는 반항적이고 제멋대로라고 비춰졌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구분이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를 ‘이해’하고 ‘공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기보다, 싸움을 붙이고 결과적으로 갈등을 초래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댓글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어떠한 사회면 기사를 가져다 놔도 댓글에서는 남성과 여성 편을 갈라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분명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에 돋보기를 가져가 함께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데, 서로에게만 총구를 겨누고 있으니 당황스럽다. 문제의 원인을 우리 팀이 아니라 상대편의 탓으로 해놓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기생충>에도 ‘선’이 등장하는데, 사회적 계층을 나누는 선이라고 볼 수 있다. 부잣집 박사장(이선균)은 선 넘는 것을 싫어한다. 운전기사(송강호)가 위태롭게 선을 넘으려 할 때마다 불쾌함을 표현한다. 선을 잘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다며, 선은 지키자고 말한다. 반지하층에 사는 기택(최우식)이네 가족과, 대문을 넘어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부잣집 박사장네 가족 사이에 사회적 지위와 부의 차이로 인한 명백한 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선을 긋는 것이고 보강하는 것이다. 

  영화 <그린북>과 <언터처블: 1%의 우정>도 이어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그린북>은 19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 클럽에서 일하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토니 발레롱가와 아프리카계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 리 박사가 투어 공연을 떠난다. 그 둘은, 인종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 성향, 살아온 환경, 가치관, 사회적 지위, 취향과 교양 등 닮은 점이 없다. 서로에게도 접점이 있을 거라 딱히 기대하지 않는다. 투어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주고, 친구가 된다.      


  겪어보기도 전에 편견에 둘러싸여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야’라고 가운데에 수직선을 그어버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우리는 이 직선을 어떻게 그을지 결정할 수 있다. 90도만 돌리면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선을 긋지 않고, 연결하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다. 다른 점을 찾아 구분하는 데에 집중하기보단, 접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면 수많은 연결선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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