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감성 아카이브 · a visual diary by jiiin
어제 봄 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찬란함의 역설이 떠올랐다.
이번 봄은 유독 기대가 컸기에 떠나보내는 게 더 아쉬운가보다. 3월까지 눈이 내리고 롱패딩을 입어야 했던 긴 추위 덕분에, 따스한 햇살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목발 없이 보낸 생일, 경의선 숲길 벤치에서의 낮잠, 벚꽃 아래 정자에 누워있던 오후까지... 짧은 순간이지만 더 또렷하게 남았다. 마트 진열대에 붙은 '올해 마지막 딸기'라는 문구에 괜히 손이 먼저 가듯, 끝이라는 말에는 사람 마음을 툭 건드리는 묘한 힘이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계절이라는 교과서에게 자연스럽게 '끝'을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봄은 오면 언젠가 떠나고 꽃은 피면 머지않아 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끝 너머에는 여름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도 있다. 이렇게 자연은 이별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줬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는 비유처럼, 마지막은 늘 다음을 위한 예고편이 된다.
교환학생 때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벌써 그립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움은 지나간 뒤보다, 지나가기 직전에 가장 선명하게 찾아오는 것 같다. 끝나기도 전에 찾아온 아쉬움은 요즘의 봄 날씨를 닮았다. 그래서 더 오래 산책하고, 천천히 바라보고, 조용히 간직하고 싶어진다. 봄의 끝에서 느끼는 이 애틋함은 사실 삶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청량한 하늘이 곧 올 테니까 이번 끝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진영.
《봄의 끝에서》 · When Spring F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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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sual diary by jiiin
shot on iPhone X, 202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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