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inko Nov 17. 2021

소리를 디자인하는 사람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촤아압. 습, 챱 챱 소리를 내며 야무지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본인은 이어폰을 끼고 있어 자신의 먹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그 순간 하던 일과 대화를 모두 멈춘다.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리에 예민한 내가 소리에 대한 책을 썼다. 《소리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책으로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직업에 대해, 소리에 대한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첫 책은 출간일이 계속 미뤄져 탈고 및 출판사와 계약 후 1년이 훌쩍 넘은 후 출간되었는데 이번 책은 다행히도 모든 것이 매우 신속하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른 일과 병행하느라 원고 마감일까지 시간이 조금 촉박했는데 맥북 파인더를 뒤지다 몇 년 전에 써놓은 '소리에 관한 에세이' 원고를 신통방통하게 찾아냈던 것이다! 굉장히 열정적인 시절에 써놓은 글이라 내용도 훌륭했고 이번 에세이와 주제도 통해 아주 요긴하게 썼다. 


인쇄 된 책을 받고 나의 실수를 인지하기 전까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초기 테이프 딜레이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며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를 이유로 60년대를 90년대라고 잘못 썼다. 감히 전자음악의 역사를 바꿀 뻔했다. 2쇄부터(부디 2쇄가 찍힐 수 있길) 정정하기로 했다. 다음부터 더욱 치밀하게 교정해야 겠다. 


살면서 책 열권 쓰기가 목표인데 벌써 20%를 달성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종이에 담아낼지 기대되는 미래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



작곡을 끝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곡과 편곡만 끝내고 나면 음악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믹싱하지 않은 음악은 대접 안에 달걀프라이, 온갖 나물, 참기름, 고추장 등을 모두 때려 넣고 제대로 비비지 않은 채 그대로 떠먹는 것과 같다. 밥알과 나물은 흩어지고 고추장은 뭉쳐 있다. 성격이 급한 엄마는 비빔밥을 가끔 이렇게 먹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의 숟가락을 탁! 막는다._70쪽, 〈소리의 균형, 사람의 균형〉에서



나는 의뢰받은 일과 개인 작업의 분계선을 구분하지 못해 내 시간뿐 아닌 상대방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방대하게 낭비했다. 업자를 불러 화장실 바닥에 타일을 깔아달라고 했더니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듯 하나하나 정성 들여 타일을 직접 만들고 있는 꼴이었다. 육안으로 티도 안 나는데 모양이나 질감을 약간씩 달리해 개성과 디테일까지 더하려 한다. 말릴 수도 없고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는 튼튼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가격의 타일을 빈틈없이 매끄럽게 붙여주는 걸 바랄 뿐이지 예술혼이 듬뿍 담긴 작품을 원하는 게 아니다._98~99쪽, 〈대중성이 뭐길래〉에서



막상 학교에 가보니 나의 소음 사랑은 같은 과 학생들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그들은 소음에 미쳐 있었다. 수업 시간에 소리를 녹음할 사물을 하나씩 가져오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식물이 자라는 소리를 녹음하겠다며 화분을 가져온 학생에 비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알약을 가져간 난 초짜 중 초짜였다._152쪽, 〈런던이 열어준 소음의 세계〉에서



왜 우리는 소리에 더 관대한가. 왜 보행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거리에 내놓은 스피커를 이용해 바닥이 울릴 정도의 볼륨으로 행패를 부리는 핸드폰 가게에 분노하지 않는가. 왜 지하철을 점령한 광고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소리에 분노하지 않는가. 우린 공사장이 만드는 소음에만 유독 더 박하다. 공사장에서 만들어 내는 소음은 가끔 듣고 있으면 패턴을 파악할 수 있고 리듬을 느낄 수 있다(그래서 구체음악과 인더스트리얼 음악이 탄생했다)._189~190쪽, 〈소리 혐오〉에서



소리를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매번 의견이 달라진다고 말했었다. 소리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보니, 소리를 사랑하는 내가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건 다행이며 행운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의 대변인이 되는 것이다. 소리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손과 귀를 빌려주어 대신해 주고 싶다._250~251쪽, 〈에필로그〉에서





목차

프롤로그

1장. 소리와 소음과 음악을 만지는 일
사운드 디자이너, 그 거창한 이름
취미가 직업이 되면
‘I’에게 적합한 직업
컴퓨터와 음악과 인간
가끔은 기계가 무섭다
사운드 디자인을 왜 하나요
소리가 좋지만 소리가 싫은 나의 직업병

2장. 예술인의 ‘사운드’, 직업인의 ‘사운드’
소리의 균형, 사람의 균형
나 때는 발로 뛰었지
이력서가 된 맥북
대중성이 뭐길래
돈 주는 자와 돈 받는 자
내 밥줄이 위험하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들

3장. 소리의 목소리
소리에 집중해 주세요
소리와 함께한 시간들
런던이 열어준 소음의 세계
숫자,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소리를 볼 수 있을까
나의 매미 선생님
소리 혐오

4장. 나의 목소리
소리 없는 말
음악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자
나는 가끔 울보가 된다
더 나이 들어 떠나도 늦지 않아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에필로그

작가의 이전글 마이크로해비타트 microhabita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