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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Oct 24. 2021

마이크로해비타트 microhabitat

주인님.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가 집주인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집 ‘주인’이니 주인님이 맞긴 한데 그 어감이 꽤 묘하다. 집 주인master이 곧 내 주인인 마스터master다. 그런데 미소는 주인님 앞에서 한없이 쿨하다. 비굴하지도, 간절하지도 않다. 누가 주인인지 모호한 관계가 형성된다.


담배 값도 오르고 월세도 오르고, 주변 모든 게 쑥쑥, 쉽게, 잘도 올라간다. 집 안에서도 패딩을 입어야할 정도로 추운 방바닥에 앉아 미소는 하루의 가계부를 정리한다. 인상된 물가로 지출이 늘어나 6000원이 적자다.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할 것인가, 집을 포기해 월세 낼 돈을 아낄 것인가. 지출 목록에서 '집'이라는 글자 위로 굵은 볼펜이 쓰윽 지나가며 집은 지워진다. 이제 미소의 삶에서 집은 필수가 아니다. 방을 빼기 위해 짐을 정리하며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 하나둘 쓰레기 봉지로 들어갈 때 왜 관찰자인 내 마음만 아픈 건지. 정작 장본인인 미소는 덤덤하다. 미소에겐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는데 갈 곳이 없는 미소는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열정적이던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가 잠자리를 얻는다. 음악이라는 꿈을 나누던 이들은 현실을 살아가며 많이 시들어 있다. 그들에게 집은 있지만 젊음과 열정은 사라졌고 마음은 공허하다.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집 안은 냉기와 냉소로 가득하다. 이불 속에서 잘 수 있는 방을 못 구한 날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서 자기도 하고 셀프 세탁방에서 자기도 한다. 그런데 미소에겐 불만이 없다. 늘 태연하고 초연한 자세로 다음 밤을 맞이한다.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이 생각났다. 가난을 몸서리치게 싫어해 삶을 없애버림으로 가난으로부터 도피한 가족들을 보내고 혼자 남은 ‘나’는 연탄 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상훈을 끌어들여 온기도 나눌 겸 방 한 칸에서 산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환경은 오히려 ‘나’를 더 끈질기며 활기차게 만들고 가족들은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버렸던 가난이 마치 지켜야할 성스러운 무엇이라도 되는 양 소중하다. 그 가난을, 나만의 것이었던 것을 상훈이 빼앗아 간다. 가난에 있어서는 동지인 줄 알았던 상훈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겐 가난이 경험이자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가난을 도둑맞고 ‘속에서 꿈틀대던 정다운 것들이 영영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느낀’ ‘나’는 배신감에 몸서리를 친다.


미소의 방랑은 ‘나’의 가난이다. 이 고단하고 치졸한 여정을 계속하게 하는 힘. 포기하고 싶고, 놓아버리고 싶어도 차가운 밤을 맞고, 또 밤보다 더 차가운 새벽을 맞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을 도둑맞고 부와 안정을 찾을 때 속에서 꿈틀대던 정다운 것들이 영영 사라진다. 그들을 지탱하던 생기와 온기는 사라진다.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는’ 미소는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한다. 만능 살림꾼이다. 그런 이에게 실력을 발휘할 방 한 칸 없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다. 집 있는 자들은 미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그녀는 든든하고 맛있는 밥을 지어줌으로 방값을 지불한다. 그들의 마음을 품어줌으로 모두의 집이 되어 준다.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이다. ‘미생물 또는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라는 의미다.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까다롭고 한정적인 인간에 비해 미생물과 곤충이 가진 옵션은 비교도 안 되게 넓다. 극한의 추위 또는 극한의 더위가 설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모든 힘을 동원해 박멸하려는 세력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인간은 미생물과 곤충보다 강하다. 번식력, 생활력은 약할지라도 우리에겐 생각과 취향이 있다. 생각과 취향이 있는 이들에겐 서식지와 주거지라는 단어의 정의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미소 같은 태도와 마음을 가져보고 싶다. 집 한 칸에 절절매고 집 한 칸에 울고 불며 현재를 흘려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옷을 겹겹이 입고 다니면서도 위스키 한잔의 여유를 잃지 않는 미소의 모습이 비참하지 않은 이유다. 미소에겐 한강이 집이고 서울 전체가 집이다. 위스키와 담배와, 곁에 있는 사람이 집이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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