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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Nov 14. 2020

영어가 힐링이 될 수 있을까

대기업에서 일주일간 하루 7시간 동안 학생 8명의 영어를 봐주고 피드백을 주는 과정이 오늘 끝났다. 한 학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기에 강의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바로 수업을 시작해도 시간이 부족한 일정인데 오전 9시 첫타임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습자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학생이 갑자기 영어로 "제 아들이 벌써 대학생인데..."라며 말을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듣고 있으니 아들은 벌써 대학생이고 자신도 계속 나이가 들어가는데 미래에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영어 실력도 아직 부족한데 왜 중국어에 일본어까지 공부하고 있는지,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야할 때에 과연 어학공부에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게 옳은 건지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했지만 학생들이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제는 거의 동시통역가 정도로 눈치빠르게 알아듣는 나는 웃는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 분의 의도와 심경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런 저런 고민을 혼잣말처럼 이어가다가 "그래도 가치 있고 즐겁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라며 말을 맺었다.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가끔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다. 그 분은 내가 어떤 조언을 해주길 바라고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 단지 답답한 마음속 먼지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시시콜콜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종종 있다. 높은 직책에 있는 임원 분들도 1:1 수업을 하면 회사에서 겪는 말 못할 어려움, 출근 전에 영어를 공부하고 하루종일 일에 치이다가 주말에는 상사들과 새벽에 골프까지 쳐야하는 와중에 가족들까지 챙겨야하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들 역시 단지 안에 쌓여있는 것들을 꺼내놓는 마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관리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을 여유도 없고 맘 편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대상도 없다. 그들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중립적이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하기에 아무에게나 나약한 내면의 고민을 꺼내놓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선생과 학생이 아닌 상사와 직원, 또는 직장 동료로 만났다면 그들은 나에게 마음 문을 열고 친한 친구에게 하듯 그렇게 서슴없이 이야기하지 못하고, 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가 영어가 아닌 우리나라말로 이루어졌다면 존댓말이라는 벽에 먼저 부딪히고 암묵적인 상하관계가 자연스레 만들어져 내가 간혹 던지는 위로의 말들이 그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제공하는 피상적인 의례로 들릴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위계질서를 모호하게 하는 영어라는 옷을 입으면 나이에 상관 없이 친구가 되고 더 어린 사람이 조언자가 되기도 하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영어가 가진 순기능 중 하나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처럼 얼굴은 마주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말할 때 이들은 어린아이가 되어 아이의 언어로 유치한 말까지 고자질하듯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몇 년간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 외국인 친구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종종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심리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가 될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외국인이기에 익명성이 한층 더 보장되어 한국인인 나에게보다 더 필터를 거치지 않은 거친 고민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금발머리 푸른 눈의 유럽 사람에게는 마음놓고 상사 욕을 할 수도, 회사에 대한 흉을 볼 수도 있다. 기업에서 수업료를 지원해주고 회사 내에서 하는 수업이기에 어느정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하는 나와 다르게 한국 문화에 종속되지 않은 사람에게 한국의 가장 흔한 문화중 하나인 위계질서에 대해 흉을 본다는 건 통쾌하고 신나는 일이다. 






집중과정 마지막 날, 며칠동안 불면증때문에 하루에 두세시간밖에 자지 못한 상태에서 아침 일찍 한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운전할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그것도 7시간을 내리해야하는 수업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커피를 두 잔 연속 마시고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올려 학생들에게 자발적인 학습을 독려하고 영어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힘을 쏟았다. 마지막 타임이 되고 이제 곧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시계를 힐끔 보다가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시간을 확인한 학생이 화들짝 놀라면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그 학생의 얼굴을 보니 집에 가고싶어 안달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출근 전 하는 오전 수업에서 가장 졸려워하는 사람은 겨우 한 시간 수업하고 집에 가서 쉴 수 있는 나다. 학생들은 오히려 전날 회식에서 과음을 하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황에서도 활발한 모습으로 수업에 온다. 어떤 이들은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운동을 하고 7시 수업에 온다. 이들을 보며 한국의 직장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배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 기업에 들어갔음에도 쉴 틈 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배움의 자리에 참여한다. 그렇게 빠듯하고 피곤한 일정에도 에너지 넘쳐보이는 학생에게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물어보면  ‘이 시간이 하루 중에 제일 힐링되는 시간이예요’ 라고 답한다. 그 말이 나에게도 힐링이다. 


사실 힐링이라는 단어는 문맥 내에서 잘못 사용하면 콩글리쉬가 되기에 주의해서 사용해야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영어는 힐링이다’를 직역해 ‘English is healing’이라고 한다면 주어인 영어가 행동의 주체가 되어 ‘영어가 치유되고 있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뒤에 목적어가 오거나(목적어가 온다해도 주어가 'English'이기 때문에 의미가 애매한 문장이 되겠지만) 'Learning English heals me'와 같이 문장을 풀어서 다른 방식으로 써야한다. 이렇게 직업병이 또 튀어나온다. 


영어는 힐링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말함으로써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어깨를 짓누르는 지위와 의무를 내려놓고 수다를 떨고 하소연을 할 수 있다. 오늘도 가르침을 통해 배운다. 배움도 힐링이고 가르침도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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