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들 먹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한 잡채를 하나도 먹지 못하고 버렸다. 면을 충분히 삶은 뒤 볶아야 하는데, 기름에 볶으면서 익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 때문이다. 제대로 삶지 않은 당면은 볶으면서 익는게 아니라 딱딱해졌다.
어디 요리 뿐일까. 잘될거라는 바람처럼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일이 삶에 셀 수 없이 많다.
내 부주의로 아이가 다친 일이 그렇고, 주차하다 범퍼를 박은 일도 그렇다.
모두 잘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 일이다.
아이도 잘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일이 있다. 횟수나 무게에 있어서 부모만큼 많지도 깊지도 않겠지만, 아이도 살면서 그런 일을 겪는다.
아이도 잘하고 싶지만 잘 되지않는일이 공부일것이다.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고 싶지만, 실수할 때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할 때,
아이도 속상함을 이겨야 한다.
공부 하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공부 잘하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공부 하기는 싫지만, 잘하고는 싶다. 실수하는 것, 못하는 것, 지는 것은 아이에게도 괴로움이다.
아이 끼고 공부 가르치다 욱한다면, 다음의 3가지를 떠올려 보자.
부모보다 아이가 힘들다.
실수를 줄이는 법 만큼, 실수한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공부는 아이가 이룰 몫인 동시에, 동시에 부모가 발견할 몫이기도 하다.
가장 힘든 건 본인이다.
내 부주의로 아이가 다쳤을 때, 다친 아이도 울었지만,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새차를 긁었을 때, 마음의 스크래치는 얼마나 큰가. 잡채가 맛없어 안먹는 아이보다, 해주는 엄마가 더 괴롭다. 아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엄마는 새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당사자가 가장 힘든 법이다.
아이에게 공부를 봐줄 때,
잘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실망스러울 때면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실수를 지켜보는 나도 답답하지만, 엄마보다 힘든 건 아이일 것이다.
실수를 줄이는 법 만큼, 실수한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부주의로 아이가 이마를 다쳤을 때, 아픈 아이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게 안되서였다.
도대체 왜 그랬니? 엄마가 이래서 돼?
라는 말을 속삭이고 되뇌이며 내가 나 자신을 공격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않았는데도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실수한 자신을 공격하고, 도대체 왜 그랬냐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기를 미워할지 모른다.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부모 마음이다. 그러나 아이는 실수를 줄이는 방법만큼, 실수에 한탄하지 않고,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 또한 배워야 한다.
내 인생 가운데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 뜻대로 안되는 일들과 마주하며 배운 것은
잘된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맛있게 먹어줬을 때 고마움, 주차를 단번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찾는 법을 터득했다.
물론, 여전히 나는 서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그러나, 삶의 소소한 성공과 기대대로 된 일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니 내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
아이 또한, 90점을 받아도 실수한 한개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잘했다는 만족감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설령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틀린 문제를 좀처럼 고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성장의 기쁨을 느껴야 한다.
성장을 확인하는 건, 아이 스스로 해낼 수 없으며 발견하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가 실수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전보다 나아진 성장을 발견해주는사람이 엄마인 나였으면 좋겠다.
공부는 아이가 이룰 몫인 동시에, 동시에 부모가 발견할 몫도 있다.
공부는 아이가 이룰 몫인 동시에, 동시에 부모가 발견할 몫도 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달아, 잘하는 걸 힘 안들이고도 알 수 있는 아이도 있으나,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것도 실수해, 잘하는 걸 아는 데 수없이 긴 관찰과 인내가 필요한 아이도 있다. 아이가 가진 공부머리와 실력만이 아니라, 기다려주고 관찰하며 발견하는 부모의 실력 또한 필요한 일이다.
아이는 부모의 뜻대로 되질 않는다. 부모의 기대와 소망대로 자란다면 자식 키우는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나도 아이를 향한 기대가 있고,그에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속터질 때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학창시절 제일 좋아하는 과목도 수학, 제일 잘하던 과목도 수학이었다. 그런 엄마가 수학 머리 없는 딸아이 가르치며 잘하는 걸 발견하기란 네잎클로버 찾기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못하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발견하는 자의 실력 부족도 있다는 사실이다.
공부 가르치다 버럭한다면, 아이의 실력이 부족함도 있으나, 실력을 발견하는 부모의 실력 부족과, 기다려주는 인내 부족때문일 수도 있다.
실력을 쌓는 아이의 몫은 아이가 채운다. 부모는 그걸 발견하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이는 매일 키가 자라듯 지혜도 자란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아이도 있고, 더딘 아이도 있으나 자라지 않는 아이는 없다. 어제보다 오늘 성장한 것은 확인이 어려울지 모르나, 한달전, 두달전, 일년전, 이년전보다 나은 현재는 분명 발견할 수 있다.
아이의 성장을 발견하는 것, 전보다 나아졌다는 걸 일깨워주는 것
그게 정서적 지지자로서의 부모 역할이다.
다른 집 아이 잘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인다.
그러나 내 아이 성장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길고 긴 관찰과 인내,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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