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요한이는 늦는 아이다.
생일이 늦는데 잘 안먹다보니 체구가 작다. 행동도 느리고 말이 늦다. 7살인데 혼자 먹는 것, 옷 입고 벗는 것도 여전히 능숙치 못하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기 힘으로 신발 신는 데 한참이 걸리다보니 요한이는 어린이집에서 늘 가장 뒷자리 붙박이였다.
행동도 늦고 말도 늦다보니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일이 다반사였고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안 가겠다고 울고 불며 떼를 쓴 이유는 "돼지 왔어?". "말 똑바로 해"라는 친구들의 은근한 무시와 놀림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요한이에게는 반가운 손님인 이유도 바로, 어린이집을 공식적으로 가지 않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요한이에게 악의를 갖고 건넨 말은 아니며, 모든 친구들이 그랬던 것도 아니고, 엄마가 나선 들 다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아이에게도 앞으로는 선생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걸 가르쳐주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엄마로서 참 많이 속상했고 불안했지만 그동안은 그래도 이겨내졌는데
초등 입학을 반년쯤 앞둔 지금 불안함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놀이터나갈때면 초코렛을 가방에 넣어 누나에게 하나씩 건네는 마음은 다 큰 다정한 아이.
그 속내를 말이 늦어, 표현이 어눌 해서 내뱉지를 못하니
친구에게 다가서고 싶어도 같이 놀자는 말을 못한 채 주변을 배회하다가 내게로 와서 안기고 마는 아이.
엄마에게야 정많고 착한 예쁘기만한 아들이지만
현실은 한글 읽기는 커녕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아이
누구에게 맞고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못하는 아이인데
자기 생각도 주장도 빠릿하게 또릿하게 하는 야물찬 아이들 사이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느린 아이를 키우는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걱정의 깊이와 불안의 무게는 직접 키워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이다.
대신 해줘야 할 일이 많아 손이 많이 가고,
번개같이 해야할 일에 10분, 20분, 30분은 기본이라 속터지게 하는 일상들
그런 건 차라리 견디기 쉽다.
가장 힘든 건 관계 가운데의 두려움과 불안이다.
세상은 엄마처럼 받아주고 기다려주지 않는데,
서툴고, 더딘 아이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
미움 받는다는 걸 빤히 알아채는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려운 것이다.
기쁨이 때 그랬듯 마음 졸이지 말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아이가 한뼘 두뼘 자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말 못한다는 놀림도 어리버리하다는 무시도 과거가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기쁨이 키우며 불안할 때마다 셀 수도 없이 많이 내가 나에게 건내며 나를 위로했던, 흔들릴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말이 있다. 내 책 <초등 자존감 수업>의 부제가 된 문장을 주문처럼 되뇌어 본다.
불안을 이기는 엄마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
불안을 이기는 만큼 아이를 향한 믿음이 커지고, 딱 그만큼 아이의 자존감도 자란다..
기쁨이도 그랬듯, 요한이 너도 그럴꺼다.
자라지 않는 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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