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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플 Feb 17. 2022

나의 실이 누군가에게 득이 될 수도 있음을

제주 한 달 살기의 작은 흔적 #3

    일간은 정신이 없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렸던 제주 카페였거늘, 서울의 일상처럼 차가운 콘센트를 찾아 노트북의 전원을 꼽는다.


평화롭기 그지 없었던 게하의 쿠션 털기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일거리가 되었다. 데드라인을  맞추고 버둥거릴 때는 영락없이 사무실의 직원마냥 성질이 나기도 하고.. 해안산책할  조차 예상한 시간을 초과했다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나는 여전히 조급했다. 그러나 조급한 나의 마음과 달리 제주의 바다는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어제는   있으면 아침 바다를 보자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이른 시간 산책을 나갔다. 주말부터 태풍이 도사려 날씨가 한참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시간을 들여 길을 나섰건만, 시야에 모래가  정도로 무진장 바람이 불었다. 지난  취객이 진상을 부린지라 제주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엎친  덮친 격으로 햇볕까지 사라지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서울이든, 제주든 어딜 가나 똑같은 사람일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환경의 힘보다 사람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관성이  강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오늘은 웨이팅이 길다는 유명한 맛집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평소와 달리 바다 짠내가 났다. 돌아보니 기운차신 할머니들이 해변가에 가득찬 톳들을 하나하나 도로 기고 있었다. 아마도     강한 바람 덕택에 육지로 가득 밀려온  싶었다.


  나에게는 우울했던 날씨가 누군가에게는 더없는 행운이 아닌가.


   "제주도는 태풍이 불면 육지에서 부리나케 표를 예약하는 사람들이 있어. 파도가 쎄서 서핑을 하기  좋거든."


일전에 하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 해주신 이야기다. 동네 곳곳에 널려있는 풍력 발전기는 맑은 날보다  힘차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래, 나와 달리 태풍이 와서 신이  이들도  많았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이전에는 쉽사리 인정할  없는 것이었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라 결론짓자고, 그것이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나를 지킬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는 철없는 나를 따끔하게 쓰다듬는다. 태풍도 즐거움이   있음을. 무엇이든 하나의 결과를 낳는 것은 없음을.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도 누군가에게 득이   있음을. 이러한 이치를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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