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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고래 Jul 02. 2024

이병주와 발자크

열일곱 아들에게 보내는 문학 편지 #1

문학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문학을 매개로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빠가 그간 읽어온 작품과 작가 중에서 내 마음을 깊이 울렸던 이야기를 들려줄게.      


첫 번째는 이병주 작가에 대해서야. 이 사람은 소설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그의 시대의 한 측면을 놀랍게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소설을 통해서 소위 박정희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좋은 작가라고 본다. 물론 말년에 전두환을 찬양하는 듯한 행적을 보였고 그로 인해 아직도 후대 작가들이나 시민들 사이에서 나쁜 평가를 받고 있지.     


이병주는 스스로 한국의 발자크가 되기로 했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발자크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한 가지만, 그의 ‘인간희곡’ 계획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하자. 발자크는 1830년 무렵부터 1948년까지 20년이 안되는 기간에 100여 편, 그러니까 평균 1년에 다섯 편의 소설을 써낼 만큼 다작을 했는데, 이 많은 작품이 거대한 하나의 계획 속에 배치되고 조율된 작품이었어.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소설과 단편들은 크게 세 개로 묶을 수 있는데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로 묶을 수 있다. 풍속 연구는 다시 사생활 풍경, 지방 생활 풍경, 파리 생활 풍경, 정치 생활 풍경, 군대 생활 풍경과 전원 생활 풍경으로 나뉜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5%B8%EB%A0%88_%EB%93%9C_%EB%B0%9C%EC%9E%90%ED%81%AC     


너의 어린 시절 아빠가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고 그 중에 네가 관심을 보였던 작품이 ‘고리오 영감’이었는데, 허영심 많은 딸을 화려한 파리에서 키우면서 허름하고 누추하게 사는 고리오 영감에 대한 이야기가 초등학생인 너에게 신기하게 들렸을까. 아무튼 발자크 하면 떠오르는 이 작품을 포함하여, 내가 또 재미있게 읽은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소설, 그리고 발자크로 검색 되는 거의 모든 작품이 이 사람 평생의 계획인 ‘인간 희곡’을 구성하는 부품이었던 거야. 발자크는 19세기 초 프랑스를 그의 작품 안에서 낱낱이 그려내려 했던 것 같아. 이 세상을 세 개의 분야로 나누고 이를 다시 하위 항목으로 나눠서 해당되는 측면을 이야기로 묘사하는 거지. 이 사실이 나에게는 문학가, 소설가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야심으로 보인다.     

 

이병주도 역시 그의 시대를 담으려고 했어. 일제 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시간을 낱낱이 그려내려고 했지. 그의 친구였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후에 오히려 감옥에 가는 시련을 겪은 다음 이 사람은 소설가로 변신하게 되는데 그의 소설은 사실과 허구를 조합한, 아니 오히려 사실을 증언하는 데 치중한 면이 있을 정도야. 1921년에 태어나서 일본에서 유학했고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전쟁을 경험했으며 해방 후에는 교수와 신문사 주필을 하다가 징역을 살고 나온 후에 44세의 늦은 나이에 작가에 등단해서 1992년, 72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총 80여 편의 소설을 쓰는 다작의 능력을 보여줬어.      


아빠가 재밌게 읽은 작품은 "지리산"과 "산하"야. "지리산"은 일제 말부터 한국 전쟁 시기까지를, "산하"는 이승만 정부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 나온 주요 인물이 실존 인물이야. "지리산"은 역사책에서 다루는 몇 줄, 몇 쪽으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게 해방과 빨치산, 한국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산하"는 이승만 정부 때 실존했던 한 정치인의 이야기야. 시골 무지랭이에서 거물 정치인, 토건업자가 되기까지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이 다음은 박정희 시기인데 "그해 5월"이란 작품이 있어. 이건 허구보다는 사실에 치중한 작품으로 소설의 몇 곳은 다큐멘터리 성격을 띄고 있을 정도야. 재미는 덜 하더라구.      


이병주 작가가 그리는 한국 현대사는 조정래 작가와 사뭇 다른데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주제를 잡아 이야기하자.      


인간군상. 문학이 사랑 받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는 점에 있겠지.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두 문장은 이병주가 스스로 밝힌 문학론이야. 산맥 사이 골짜기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이야기. 밤이 되면 피어나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문학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시인으로서 인간군상을 담으려 야심을 품었던 사람도 있는데 바로 고은 시인이야. 9년 연속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국제적으로 유명해. 다른 많은 작품이 있지만, 오늘 소개할 작품은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약 25년간 4001편의 시를 30권의 시집으로 발표한 연작 시집 “만인보”야. 1950년대 고향집에서 보았던 ‘머슴 대길이’부터 진보당 당수 조봉암, 그리고 2009년 타계한 전 노무현 대통령까지 만인보에 이름을 올렸지. 그도 발자크나 이병주처럼 문학을 통해 세상을 그려내겠다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인 듯해.      


문학이 무엇인가, 더 자세히,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동서양의 오랜 논쟁 주제야. 우리 문학계에서도 ‘참여문학 대 순수문학’ 논쟁이 있었지. 아들이 하려는 문학이 어느 편인지, 두 편 중에 어느 것도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난 시절 문학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알아보는 건 그 자체로 흥미 있을 거야. 발자크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까지를 아우르고 가장 비천한 사람부터 귀족의 세계까지를 아우르는 넓은 관점으로 19세기 프랑스를 조망했고, 이병주는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현대사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솔직하고 너저분한 밑바닥 인생부터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포괄하려 했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큰 뜻이 후배 작가들에게 울림을 주지 않을까 하여, 문학에 뜻을 둔 너에게 소개한다. 


다음 편지에서 만나자.     


- 편지를 시작하게 된 사실에 감사하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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