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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Oct 06. 2020

어쩌다, 핸드볼 (3) 코트에 나타난 물음표 살인마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그리고 첫 승리

단 한 번의 승리도 맛보지 못한 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석사 2년 차가 되었다. 핸드볼 팀에도 변화가 생겼다.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난 빈자리를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채웠다. 선수 출신이라 팀에 든든한 전력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밝고 실수 투성이인 깍두기였지만, 1년 차라는 짬이 생겼다.



한 번도 공을 만져보지 못한 친구 두 명이 팀에 합류했다. 선수들이 팀에 합류해 든든하기도 했지만, 초심자들이 들어와서 기뻤다. 불안함을 공감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존재 자체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너무나 지질한 마음이지만,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뒤에서 1등이나 2등이나 무슨 차이냐고 할지라도 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건 든든했다.


누구보다도 같은 감정을 느끼기에. 같이 진땀 흘릴 테지만 그래도 덜 힘들기를 바랐다. 수비할 때 손을 건들면 안 된다거나, 공격한다고 몸으로 부딪혀서는 안 된다거나. 패스를 받을 때, 경기장 밖에서 받지 않아야 한다거나.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건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지만, 첫 경기 때 선이 어딘지도 모르고 뛰어다닌 게 나였으니까. 한 학기가 지나고 실전 경기에서 퇴장을 3번이나 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공유했다. 일 년 내내 연습 때마다 이 팀의 물음표 살인마는 나였다.



삑- 파울이야.

삑- 다음엔 이러면 안 돼. 퇴장이야.

삑- 페널티야.

삑- J 알지?

삑- 건드렸어.

삑- 선 넘었어.

삑- 공 넘겨.


왜? 왜?

왜? 설명 좀.

왜? 이해 안 돼.

어? 미안.

왜? 나 뭐 했어??

왜? 그럼 안 되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Pourquoi?(프랑스어로 왜?) 발음을 기갈나게 잘하는 건 핸드볼 연습이 한 몫했다. 일 년 내내 뱉어낸 단어이기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얼굴엔 더 두꺼운 철판을 깔았다. 처음에는 창피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뻔뻔해졌다. 모르니까 물어보고, 지금 알고 넘어가야지 실전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훈련 때마다 나는 배우려고 왔다는 말을 되새겼다. 그렇다고 실력이 하루아침에 나아졌다거나,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마음에 얹힌 돌덩어리는 묵직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1년 차 때는 굳이 내가 못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훈련 코트도, 뛰어다니는 시간도 다 불편했다. 몸을 많이 써서 힘들기보다는 따라 하려고 눈치 보고, 같이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분위기를 따라 웃으면서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팀이 되면서 덜 피곤해졌다. 코치도 팀원들도 익숙하다 못해 같이 많은 일을 겪었고, 이제는 내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로 함께하기에.



1월에 예정되었던 경기들이 줄줄이 미뤄지고, 3월엔 한 달 내내 경기를 뛰었다. 월요일 훈련을 마치면 그 주 목요일에 경기가 있는 스케줄이었다. 3월은 유난히 시험과 과제가 쏟아지는 달이다. 5일 내내 9시 45분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던 시기였다. 7시에 경기를 뛰려면 6시부터 부지런히 경기장으로 향해야 하고, 집에 도착하면 10시였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없었다.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내던 팀원들도 만나면 경기가 취소되기를 바란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경기를 뛰는 건 선택이다. 내가 뛰지 않으면 교체 선수가 없어 모두가 더 힘들어질뿐이다. 그렇기에 칭얼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저 옆에서 같이 뛰어주고 고마울 뿐이었다. 이 시기를 함께 겪으며 끈끈해졌다.


얼마나 힘든 지 알기에, 경기장 밖에서도 안에서도 우리는 한 팀이었다.


이렇게 짬이 차면서 익숙해지는 게 많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매 연습 때마다 죄책감, 자책감은 작아졌어도 없어지지 않았고, 연습 경기 때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내가 웃는 게 즐거워서가 아니라 민망함을 무마하려는 노력이었다.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다. 돌덩어리를 품고 매번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실패담만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경기를 뛰면서 단 한 번을 이긴 적이 없다. 비긴 적도 없고 매번 졌다. 실전 경기 때 한 번도 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그 많은 이들이 내 오른쪽과 왼쪽을 지나쳐가며 넣은 골이 몇 개이던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팀이 승리한 그 역사적인 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2019년 12월 19일, 우리 팀이 이겼다.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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