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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Sep 27. 2020

어쩌다, 핸드볼 (2) 위기를 마주한 팀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그리고 첫 경기

두 번째 경기 날이 왔다. 당일 상대팀 코치에게서 문자가 왔단다. 경기를 뛸 수 있는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오늘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내 첫 경기가 될 뻔했던 경기는 미뤄졌고, 2018년이 지나갔다. 2019년을 맞이하며 2학기 개강을 하고,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떠나고, 우리는 8명이 되었다. 경기를 뛰기 위해서는 7명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팀에서는 한 포지션만 교체 선수가 있고, 모두 경기를 풀로 뛰어야 했다. 한 경기가 지나자마자 우리 팀은 벌써 위기를 마주했다. 교체 선수 한 명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농구부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경기 때만 같이 뛰어 달라고. 그렇게 우리는 경기 때마다 9명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피구를 할 때는 내가 잘했기에 자신감도 있었고, 팀을 이끌기도 했다. 잘했기에 팀이었고, 못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함께 모든 걸 쏟아부었고,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한 팀이기에 각자 맞는 포지션이 있을 뿐이었다. 핸드볼 팀도 나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팀인 게 중요한 거니까. 나에게 돌덩어리를 얹힌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더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했다. 공을 받고 패스를 하는 것도 두려웠고, 수비를 할 때도 겁이 났다.



2학기가 되었으니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보호대를 차고 한 달을 보내면서 어떤 훈련에도 참여할 수 없었으니 결국 한 달 반만 훈련을 한 셈이다. 2019년이 되어 다시 코트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겁이 났고 여전히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돌덩어리를 품고 있기 싫어, 못하는 내 모습을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 화요일에 학교로 돌아가면 월요일에 내가 얼마나 못했는지를 개그로 승화했다. 친한 친구들도, 가깝지 않은 어색한 팀원들도 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훈련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웃음으로 털어놓으며 비워낼 수 있었다. 비워냈기에 월요일마다 다시 코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웃음으로 비워냈다고 해도, 코치와 친구들이 건넨 따뜻한 말이 아니었으면 훈련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3명의 초심자가 있었지만, 실수하고 느끼는 감정을 동네방네 떠들어 대는 나는 팀에서 대표 깍두기였다. 코치도 팀원들도 대표 깍두기를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다뤘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한 일이 있으면 너무 잘했다며 온갖 칭찬을 했다. 훈련할 때마다 작아지려는 나를 끌어올려준 건 그들이 건넨 따뜻한 손길이다. 코치는 내가 우스갯소리로 너무 못해서 암담하다고 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쟤네는 어릴 때부터 해온 애들이야. 5년 넘게 한 애들도 있다고. 넌 이제 처음 시작한 거잖아.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나를 핸드볼로 꼬드긴 친구들은 우리가 함께 즐긴다는 걸 매번 강조했다.


"잘하는 게 중요해? 아니야. 같이 하는 게 즐겁지 않아? 즐거우면 된 거지. 우리 잘하진 않지만 함께 너무 재밌지 않아?"



왜 잘하려고 했을까. 잘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잘해서 나쁠 것 없지만 내가 훈련장에 나와 공을 던지고, 몸을 부딪히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었다. 핸드볼을 하면서 못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못하면 또 어떤가. 우리는 지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짓누르던 돌덩어리는 점점 작아졌다. 여전히 코트 안에서는 겁이 났고 두려웠다.



2019년 첫 경기. 팀으로는 두 번째 경기이자 나에겐 처음 발로 뛰는 경기였다.
그동안 두려움을 이겨내고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었을까.
함께 이뤄낸 첫 승리는 짜릿했다.



라고 쓸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첫 경기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우당 탕탕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따뜻한 팀원들과 코치와 함께였지만, 여전히 난 룰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뜩이나 두렵고 겁이 많은데 실전 경기를 뛴다니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듯했다.



목요일 6시 반에 학교 앞에서 모여, 친구들의 차에 나눠 타고 Rennes에 있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유니폼이랑 공이 든 가방을 짊어지고 탈의실로 향했다. 반팔에 반바지 유니폼을 입어서 그런가 경기장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후드티를 걸쳐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스트레칭을 하고 경기장을 뛰면서 몸을 풀었다. 공을 주고받았고 줄 서서 골 넣는 연습을 하며 골키퍼도 몸을 풀었다. 공이 잘 달라붙을 수 있게 손에 풀을 묻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며 찡찡대기도 했다. 그래도 휘슬은 울렸다. 나의 첫 경기는 최악이었다. 공을 잡았더니 갑자기 상대 팀에 공을 주란다. 왜?? 내가 선을 넘었단다. 아직도 세 발자국 앞에서 빛나던 노란 선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정식 핸드볼 경기장이 아니라 여러 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코트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수비를 하는데 10분 퇴장이란다. 이미 공을 들고뛴 상대팀을 막아섰기에. 교체되어 벤치에서 응원하다가 다시 후반전 반이 지날 무렵 다시 투입되었다. 이 구역의 구멍은 나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했다.



교체 선수조차 없어 풀타임을 뛴 센터 자리 친구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고 상대편과 악수를 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숨을 몰아 쉬며, 너무 힘들다고 온몸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결과는 어땠냐고? 졌다. 물론 이기면 참 좋았을 텐데, 5점 차로 졌다. 그래도 초심자 3명을 데리고, 농구부 친구를 데리고, 무사히 한 경기를 마쳤다는 게 중요했다.


아직 우리는 손발을 맞춰가는 팀이었고,
배워가는 팀이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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