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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ug 08. 2020

너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았지.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재택근무 인턴 3개월을 되돌아보며

"Salut, "

"Salut, ça va toi?"


월요일 10시에 시작하는 사수와 마주하는 zoom 미팅.  화면 공유를 누르고 이번 주에 얻은 결과를 같이 보며 의견을 나눈다. 지난주에만 3번이나 미팅을 했지만 오늘은 사수도 나도 조금 더 밝다. 나는 다음 주부터 새로운 보금자리로 2주간 이사할 생각에. 사수는 다음 주부터 3주 간 휴가를 떠나기에.



"이해가 잘 안 되는 데 다시 설명해줄 수 있어?"

"이거 왜 이런 거야? 왜 다르지?"

"우리가 원래 돌리던 프로그램이랑 결과 비교해줄 수 있어? 맞나 확인 좀 하게."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은 매번 듣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첫 한 달은 매일 논문을 읽으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하며 눈 앞의 글씨들에게 질문했다. 그다음 달은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분석 방식을 설명하는 사수에게 내가 질문을 많이 했고, 지금은 사수의 질문이 몰아친다.


불편했던 이유

7월 초만 해도 한숨이 나오고 미팅 전 날 잠을 설쳤었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나를 기다린 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게 마치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질문 하나인데 거기에 나는 내가 딴짓하던 일상, 준비되지 않은 모습들을 떠올렸다. 질문을 마주하는 걸 참을 수 없던 게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날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불편했던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일하지 않은 날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후회로 남을 까 봐. 열심히 하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그 날들을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 조금씩 쌓아가는 일이라는 걸. 벼락치기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굴 탓할 것도, 핑계도 없었다.


7월 2일의 기록.

그러면 하면 되지. 괴로워하지 말고. 핑계를 만들지 말고.
불안함과 불편함을 품고 지내고 싶지 않다. 그냥 하자.
또 읽고 다시 읽고 다른 거 읽다가 읽고. 다시 마주할 때마다 하나씩 익숙해지면 된다.
볼 때마다 새로울 것이다. 모르면 저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사수가 던진 질문들은 나도 궁금했던 것들이었다. 여러 저자들이 남긴 발자취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말들. 그게 나를 평가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내가 정 이해가 안 되면 저자한테 이메일이라도 보낼게. "   


그게 뭐 그리 어렵고 힘든 대답이었나 싶다. 같이 고민하고 내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이란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는 건, 내가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니까. 월요일 10시. 30분이면 끝났던 미팅이 이제는 1시간으로 부족해졌다.



어땠어? 3개월 동안?

"그동안 한 번도 안 물어봤던 것 같은데. 이제 반이 지났네. 어땠어? 3개월 동안?"


갑자기 사수가 그동안 어땠냐고 물었다. 모든 게 낯설었고 새로웠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로 시작했고, 이메일이나 화상회의로 소통하고, 동료조차 없는 나의 침실이자 주방에서 일한다는 건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 가서 재택근무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물론 매니저가 칼같이 잘랐지만.



"음... 처음엔 힘들었어. 이 주제도 너무 새롭고 내가 아는 분야가 아니잖아. 일하는 환경도 그렇고. 답답했어. 근데 지금은.. 괜찮아. 재밌는 주제이기도 하고."


"그렇지. 너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았어. 나도 이런 방식이 처음이라. 같은 오피스에 있으면 바로 질문하고 대답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까... 에휴 그래도 너 이사한다니까 다행이야. 오피스로 출근하면 같이 점심 먹자."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너도 나도 서툴렀다. 쉽지 않았지만 조금은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다.



견디는 시간

3개월은 불편함으로 가득했다. 잘 모르는 내가 잘 못하는 나를 데리고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붙잡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자유로웠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하루를 내가 얼마나 개운하지 않게 흘러 보내는 지를 지켜봐야 했다. 알지 못하는 것들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들을 함께하는 감정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연구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선 보여야 할 결과가 두렵다.
이런 생각에 괴로워하는 걸 보니 연구자로
좋은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인가 보다.
- 7월, 불안감 속에 헤엄치는 어느 밤에.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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