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프랑스에서 기차 타고 이사합니다 (1)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딱히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 말이다. 내려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 건강 보험 카드가 10개월 만에 나왔다던가. 세금 신고하고 주민세 문제 때문에 3번이나 세무서에 갔더니 결국 동명이인인 어느 독일인의 계정이었다던가. 40군데 기숙사와 사회적 아파트에 서류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던가.
프랑스는 싸데펑(ça dépend)의 나라이다. 순화시켜 말하자면 네 운에 따라 달려있다는 의미이고, 내가 느낀 바로는 그냥 되는 게 없다. 사람은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무기력을 느낀다고 한다. 이 곳에서 나는 무기력을 느끼기도 전에 욕을 내뱉는 법을 배웠다.
이쯤 되면 삶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길은 만만치 않다고. 언제는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었냐고. 계획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내가 적어놓았던 것들은 막연한 꿈이자 희망이었다.
2020년 3월 수업을 마치고 4월 인턴 시작하기 전에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아 파리로 이사하는 게 목표였다. 2019년에 oecd에서 인턴 할 때, 파리 기숙사촌에 바로 입주했으니까 “당연히”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턴 하러 떠나는 친구들에게 내 짐을 나눠서 맡기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이었고 딱히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국면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코로나 19로 인해 봉쇄령이 내려지고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3월 말에 바로 방을 빼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다. 장학생 신분은 7월에 만료되면서 파리 기숙사에 입주하는 혜택은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파리 월세가 비싸서 여기서 버틸 대로 버텼다. 우리 동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쓸쓸하고 암울하다는 캠퍼스. 고요하고 잔잔한 공간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지냈다. 물론 효율적이지 않고 주방에서 혹은 침실에서 일하는 인턴 생활도 포함이다.
회사에 부탁해서 사회적 거주 공간에 서류를 돌리고, 30군데 넘는 사설 기숙사에 서류를 돌리고 7월은 집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결국 예산을 올리고, 올리고, 올리고 나서야 파리 외곽에 새로 생긴 레지던스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계약하는 과정에서 연락하는 데 답장이 당일에 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붙잡고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뱉었는지. 입주 날짜를 정해야 하는 데 또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하니 재택근무라 연락이 안 된다. 이메일 세 통을 보내고 나서야 건물 담당자가 곧 연락을 줄 것이라는 답장만 받았다. 아니 휴가이면 휴가라던가 알려주면 안 되나. 금요일인 7월 31일 날짜로 계약했고, 월요일인 8월 3일에 입주하고 싶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8월 17일에 방을 빼야 하니까 2주간 짐을 옮겨야 했기에.
짐을 어떻게 옮겨야 할까. 부탁하려고 했던 친구들은 이미 다 떠난 상태고. 1종 보통 면허는 있지만, 장롱 면허라 여기서 운전하다가 너도 나도 황천길 프리패스일 게 뻔했다. 트럭을 빌려서 친구에게 운전을 대신 부탁할 수 도 있었다. 5시간은 운전해야 한다는 작디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게 대수라고 운전해주겠다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이 기차 타고 와서 같이 짐 싣고 운전한다는 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트럭 빌리는 데 드는 비용도 컸고. 이사 업체를 부를 수도, 택배로 보낼 수도 있었다. 다만 비쌌을 뿐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건 돈을 아끼고 몸으로 때우는 것. 기차 타고 왕복하면서 짐을 옮기면 되지. Tgv max를 끊었다. 한달 79유로로 tgv 2등석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정액권이다. 가져가는 가구는 없으니까 2년 동안 쌓아둔 내 물건들만 옮기면 된다. 우선 해보고 안되면 택배를 부치던지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던지 해야겠다. 3월 달에 친구들과 농담 삼아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이사? 뭐.. 정 안되면 tgv max 끊고 기차 타고 옮기면 되지.”
그렇게 됐다. 주말 동안 29인치 캐리어를 싸고 있는데, 레지던스 담장자에게서 연락이 안 온다.
저… 당장 월요일에 기차 타고 파리 가는데요?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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