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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Apr 16. 2023

당일치기 혼자 안산여행(4)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며 걸을 때는 잘 몰랐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킬로미터가 엄청난 것이구나. 내가 저렇게 먼 곳에서부터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지방에서 한양까지 몇날며칠을 걸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빠른 것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걷는 것이든 인생이든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걷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만 마음을 가다듬는 데도 좋은 일이다.


대부도에서 다시 안산으로 가는 123번 버스를 탔다. 이번 목적지는 시화호. 안산을 이야기할 때 시화호를 빼놓을 수 없다. 시흥과 화성의 이름을 딴 시화호는 안산 소속이다. 1987년에 착공되어서 1994년에 주 방제가 완성되면서 생긴 인공호수가 시화호이다. 시화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환경오염인데 완공 이후 오폐수 문제로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는 뉴스나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서 그렇다. 방조제에 낚시꾼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이가 없고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를 유입시킨 이후에는 공업용수로도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저 호수는 대체 왜 만들었는가?


조력발전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부족한 용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는가. 관광하기 좋은 대부도를 들어가기 위한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방조제를 만들었는가. 저기에 무슨 생명이 숨 쉬고 있으며 자연을 거슬러 만든 저 거대한 호수는 그 희생의 가치만큼 인간에게라도 어떤 이로움을 주었을까. 무슨 이유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은 그 쓰임을 다하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만들 때부터 말이 많았던 시화호는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곱씹어 보면 아라뱃길 못지않은 토목공사의 헛발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헛발질이든 헛수고든 늦은 오후 시화호 방조제를 지나 대부도로 향하는 차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아침에 한가했던 방아머리 주변 상가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느릿한 차량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도 가는 길은 원래 그렇다는 것을 각오하고 온 듯한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들뜬 기대마저 엿보이는 듯했다. 한산했던 대부도행 아침버스와 달리 늦은 오후 안산으로 돌아가는 123번 버스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하지만 입석으로 가는 승객은 몇 안 될 정도였다. 대부도는 시내버스를 타고 여행하기가 그리 편안한 곳은 아니니까. 반대편 차선이 정체로 허덕일 때 뻥뻥 뚫린 우리 쪽 도로를 타고 달릴 때에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남들이 다 겪는 불행을 비켜갔다는 안도감과 함께 남들보다 일찍 나서서 이미 할 구경 다 하고 돌아갈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일종의 자부심이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봤자 찰나 중의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그 짧은 행복을 애써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이사이를 분투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시화호 방조제 한가운데에는 조력 발전소가 있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호수 이쪽과 저쪽 사이를 흐르는 물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시설이다. 조력발전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그걸 현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세계최대의 발전용량을 자랑하는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수자원공사의 관할이다.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휴게소도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주변 시설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75미터 높이의 달전망대이다. 심지어 관람료도 없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통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아찔한 풍경도 볼 수 있고 시화호와 방조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여유를 즐길 생각이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왔다. 


다시 123번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안산역 다문화거리로 향했다. 18시까지 운영하는 경기도 미술관과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아무래도 제시간에 맞추기 어려울 듯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안산역 앞에 있는 다문화거리는 안산 9경 가운데 하나이다. 자연경관이나 역사유적이 아닌 곳을 8경이니 9경이니 하는 지역의 명물로 내세울 만큼 다문화는 안산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하지만 다문화거리에서 볼거리는 많지 않은 편이다.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먹을거리를 파는 상점이 즐비하고 오가는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우리나라인데도 나도 모르게 뭔가 위축되고 소심해져서 선뜻 무슨 물건을 사거나 카메라를 들이대기 쉽지 않았다. 말을 걸면 왠지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문화 거리 시장을 한 바퀴 휙 돌고 나서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다문화 거리에 걸맞은 음식을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다 보니 용기도 나지 않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결국 선택한 곳이 베트남쌀국숫집이었다. 베트남고향식당이라는 정겨운 간판을 한 식당의 주인장은 베트남에서 귀화한 이미현 사장님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신 분으로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핵인싸급 유명인사였다. 어쩌면 그 사장님이 바로 안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짐작과 달리 일찍부터 외국인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안산시민들의 다문화 감수성은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 높다고 한다. 시화호 건너편에는 안산이면서 안산이 아닌 듯한 곳이 있고 안산역 앞은 안산이 아니면서 안산인 듯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대부도의 안산사람은 안산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베트남에서 온 안산사람은 안산사람이 다 되었다. 이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과 문화가 뒤섞여 있는 도시가 우리나라에는 또 어디에 있을까 싶어 가까운 도시 안산을 다시 보게 되었다. 



06:40 집에서 출발

06:54 오류동역 도착

07:15 5200 버스 탑승

08:16 이지더원 하차

08:18 123 승차

09:17 탄도항 하차

15:33 123 승차 @성황당

15:55 시화호 휴게소 하차

16:24 시화호 휴게소 승차

17:17 안산역 하차

18:14 안산역 승차

19:30 집 도착


교통비 7,100원

커피 5,500원

점심 칼국수 9,000원

저녁 쌀국수 10,000원

합계 31,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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