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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Aug 23. 2019

엄마의 시골밥상



엄마는 늘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거나 장사를 한 것도 아닌데 한가할 틈이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직장보다 더 치열하고 장사보다 더 힘든 일은 집안일과 농사일이었습니다.
거두어 먹어야 할 가족은 많았고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아버지와 함께 하는 농사는 엄마의 몫이 더 컸습니다.
음식을 잘 만드는 일이 엄마의 관심사가 아님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반찬보다는 찬장이나 냉장고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왜 맨날 우리는 먹던 반찬만 먹냐며 투정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바쁜 엄마가 부엌에서 필요한 미덕은 속도였지 상차림이나 깊은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하는 것만큼은 1등을 놓치지 않을 엄마의 음식 솜씨는 괜찮은 편입니다.

자두가 유난히 풍년이었던 올 여름, 자두를 따러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열매를 따서 선별하고 포장하느라 가족들이 손을 걷어 부쳤습니다.
일 하는 사람 밥만큼은 섭섭하지 않게 해먹여야 한다며 엄마는 점심밥을 짓습니다.
엄마가 마법을 부릴 시간입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채소 반찬 두어 가지를 만들기로 합니다.
농장 한쪽에 심어 둔 풋고추와 가지를 땁니다. 호박도 빼놓을 수 없지요.
갓 따낸 싱싱한 채소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비바람 맞고 햇볕 쪼이면서 언제 이렇게도 자랐나 싶어 기특합니다.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고추찜을 선택했습니다.
채반에 잘 씻은 풋고추를 얹고 밀가루를 솔솔 뿌립니다.
밀가루가 투명해질 때까지만 살짝 쪄냅니다.
그래야 아삭하면서도 부드러워집니다.
진간장, 고춧가루, 빻은 마늘, 통깨,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리면 금세 완성됩니다.

가​지나물도 별미입니다.
갓 따낸 가지는 매끈하고 탱탱합니다.
듬성듬성 썬 가지를 채반에 넣고 한 김 찝니다.
수분이 많은 가지는 살짝만 쪄도 충분합니다.
이 뜨거운 걸 엄마는 거친 손으로 죽죽 찢어냅니다.
빻은 마늘을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면 됩니다.
부드럽고 촉촉한 가지나물도 뚝딱입니다.

시골 하면 된장이죠.
올해 담근 햇된장을 장독대에서 퍼옵니다.
된장이 맛있으면 다른 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애호박, 양파 몇 조각 듬성듬성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이면 됩니다.
된장찌개가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음식이었나 싶습니다.
좋은 재료가 가장 좋은 조리법이라는데 괜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김치 몇 가지와 함께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이쯤 되면 한 상이라고 해도 손색없겠습니다.
자두농장에서 한껏 땀 흘린 우리들에게 엄마의 손맛은 꿀맛입니다.
마루에 대충 걸터앉아 먹는 엄마의 시골밥상 점심 한 끼는
기억 속에 조금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두를 따던 그 여름날 불던 뜨거운 바람,
뭉게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
약간은 비릿한 밥 냄새,
이따금씩 컹컹대던 뒷집 개의 울음소리,
식지도 않은 가지를 찢던 엄마의 투박하고 거친 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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