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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Nov 11. 2020

1924년 잡채와 음식의 전통에 대하여

외국인에게 잡채 만들기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잡채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 싶어
1924년에 출간된
조선무쌍신식리제법을
들여다 보았다.
(무쌍은 쌍거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비교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1924년 버전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

도라지, 미나리, 황화채(원추리), 고기와 제육,
표고버섯, 파, 움파, 간장, 기름, 깨소금, 계란지단,
잣, 석이버섯, 실고추, 해삼, 전복, 배,
당면은 별로 죽순은 안 들어감.
겨자나 초장에 찍어 먹음.

2020년 버전 우리집 잡채
당면, 양파, 당근, 시금치, 느타리버섯, 돼지고기

현대 잡채에도 여러 버전이 있겠으나
불과 100여년 사이에 달라진
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잡채 하나만 봐도 이런데
이렇게 끊임없이 섞이고 섞이면서 변하는
음식에 대해 마치 불변의 전통 같은 것이
있는 양 애쓰는 건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 다큐
"이탈리안 키친 : 음식의 이민사" 후반부에서
피렌체의 요리사 Fabio Picchi가 한 말이
너무나 멋져서 인용해 본다.

"'위대한 이탈리아 요리'라는 얼빠진 소리는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 쓰는 토마토는 아메리카에서 리보르노로 와서 이탈리아 전체에 퍼졌거든요. 우리가 쓰는 아티초크는 옛날에 터키에서 왔고 한 때 우리 농부들은 배를 '페르시아'라고 불렀어요.
우린 그 모든 것을 들여와서 그걸 이해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 줄 알았죠.

피렌체 요리의 상징이 '비스테카'인 걸 생각해 봐요.
'비스테카'는 그냥 쇠고기 스테이크에요. 영국군이 산로렌초 지구에서 타다 남은 장작불에 고기를 구워먹는 걸 보고 피렌체 요리로 만든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요리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
수 천년 동안 계속된 이 단순한 일이 마치 경이롭고 매혹적인 복잡한 음악 같습니다.
수많은 분자와 향기와 맛과 그 지역에 대한 존중심과 들판과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업에 대한 존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니까요.
여기엔 멋진 바다와 산들이 있으니 운이 좋은 지역이죠."

음식과 전통에 대한 이보다 멋진 이해와 표현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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