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 가는 카메라거리

나의 사소한 대만여행기

by 오궁

어느 도시를 여행하겠다고 정하면 그 도시를 공부하고,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장소를 지도에 표시한다. 관광명소든 식당이든 시장이든 거리이든 관계없이. 지도 위의 도시에 찍혀있는 점들을 보면 가기도 전에 내가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실용적으로는 동선을 짤 때 아주 유용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사진과 카메라에 관심이 있다 보니 타이베이에 카메라거리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해도 3박 4일 일정에 굳이 갈 필요까지 있겠나 싶었는데 공항철도를 타고 들어오다 보니 마지막 역인 타이베이 메인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도시의 분위기도 눈에 익힐 겸 해서 타이베이 첫 방문 장소로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서울로 치면 남대문 카메라 상가와 비슷하고 더구나 타이베이의 명동 같은 시먼딩도 가까워서 호텔 체크인하기 전에 잠시 들르기 좋을 곳이다.


한자로는 北門相機街(북문상기가). 주변에 공공기관과 언론사가 많이 카메라 수요가 있었고 1958년 첫 점포가 문을 연 뒤로 상권이 형성되었다가 업종을 막론하고 소규모 오프라인 점포들이 겪은 운명에 따라 점점 쇠퇴했다고 한다. 점점 거리가 지저분해지고 황폐해지자 2003년부터 ‘베이먼(북문)카메라거리발전위원회’가 결성되고 본격적으로 정비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거리도 정비하고 간판도 카메라 거리답게 필름 모양으로 통일하고 사진전 같은 문화행사도 개최했다는데…


비슷한 높이의 오래된 건물들은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도록 잘 정비되어 있었고 필름처럼 세로로 줄지어 늘어선 상점들의 간판은 여기가 카메라 거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타이베이가 거리 감성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도 하더니 출사지로만 놓고 보면 꽤 괜찮은 장소였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이번에 들고 온 똑딱이 카메라 소니 RX100M7에 목에 거는 넥스트랩이나 하나 달아줘야겠다 싶어 몇몇 카메라 용품점을 판매하는 곳에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았다. ‘요즘 누가 이런 데 와서 카메라 사요. 클래식 카메라나 필름 카메라면 모를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라면 뭐든 구해줄 수 있을 업력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을 법한 포쓰가 풍기는 주인장들이 매장에 갖추고 있는 카메라와 액세서리들은 종류도 많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제품을 파는 가게도 없었다. 설마 넥스트랩 하나는 살 수 있겠지 하던 기대는 접을 수밖에…(나중에 용산 전자상가 같은 신트렌드에도 가봤지만 구하지 못했고, 결국 한국 들어와서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화요일 오후여서 더 한산하고 쓸쓸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눈에 띄는 번듯한 브랜드의 매장이라고는 라이카밖에 없는 이 카메라 거리는 관광지의 민속마을 같았다. 발전위원회까지 만들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간판까지 바꿔달면서 노력을 했지만 흐르는 세월과 바뀌는 트렌드 앞에는 장사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 거리가 카메라 사러 말고 들고 놀러 온 사람에게는 타이베이라는 도시의 감성을 보여주기 좋은 피사체여서 목줄을 달아주지 못한 똑딱이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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