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만난 젊은이들

나의 사소한 대만여행기

by 오궁

여행자로서 어떤 도시를 다니다 보면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 남들 다 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 사람들만 가는 식당을 가게 되거나 한국 사람 하나 없는 곳을 찾았을 때 우리는 여행에서 희열을 느낀다. 독점욕이라고 해도 좋다. 여행에서 난이도만큼 성취감도 높은 것이 거기 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번역 어플로는 어림없고 내 입과 상대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 서로 같아야 경험으로서 대화가 성립한다. 내가 중국어를 할 줄 모르니 한국어나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접점이 많지도 않거니와 그런 사람 찾기도 어려워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타이베이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동창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신날 일이었으니까.


쓸쓸한 카메라 거리를 뒤로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시먼딩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같은 거리에서 50대 아저씨는 보고 걷고 사진 찍는 것 정도를 할 수 있었다. 유명 밀크티 집엔 줄을 서 있었는데 무엇인가에게 지는 것 같아서 대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사진에서 많이 본 무지개 횡단보도에도 줄을 선 사람들은 설렌 표정으로, 빨주노초파남보에서 노초 쯤에 자리 잡고 선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시먼딩을 즐기고 있었다.


건너편엔 시먼딩의 상징과도 같은 서문홍루의 붉은 자태가 내 발걸음을 당겼다. 서문홍루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건물이라서 외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야경을 사진으로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부에는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기념으로 하나쯤은 사고 싶을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가득했다. 혼자 다니는 해외여행에서 쇼핑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인데도 눈에 띄는 매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웃도어 용품을 파는 매장인데 생소한 브랜드였다. 모자 하나가 색감이나 디자인, 기능이 맘에 들어서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가망고객이라고 판단했던지 젊은 여성 직원이 다가온다. 이 브랜드는 대만의 원주민 문화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데 모자며 가방 등에 새겨진 그림들이 다 그 상징들이라고 한다. 대만에는 전부 중국계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원주민이 있다는 이야기는 여행 오기 전 읽은 책에서 알게 되었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뒤에 온 사람들에게 밀려나 겨우 그 문화를 어렵게 유지하며 사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이 브랜드의 제품 하나를 사는 건 여러모로 대만 여행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어 마음에 들었던 모자의 가격표를 보니… 대략 7만 원 정도. 3~4만 원이었면 주저 없이 샀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열정적으로 원주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직원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쎼쎼를 전하고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자가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다. 시내에 하나 더 있다는 매장을 검색했더니 화산1914문화창의원구가 나왔다. 기왕 가기로 한 곳이었다. 넓디넓은 문화공간에서 드디어 매장을 발견했다. 나의 설레는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젊은 남자 직원은 나를 환대해 주었다. 영어를 잘 하는 그 청년은 이 브랜드의 취지와 의미, 대만에서의 원주민 문화의 위치, 대만 젊은이들의 현재, 한국의 인기, 고향인 화롄 자랑 등등의 얘기를 전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까지 갖춘 젊은 청년과의 대화는 여행에서 꼭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채운 느낌이었다.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 사기로 마음먹고 두 번째 간 것이니까 당연히 모자는 사서 이후 여행 내내 잘 쓰고 다녔고, 집에 들고 왔더니 아내가 별말 없이 자기 옷장에 넣더라.


한국에 오고 싶다는 청년과는 인스타그램 맞팔을 했고, 한국에 오거든 꼭 연락하라고 했다. 형아가 광화문에서 점심 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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