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찰나의 행복

나의 사소한 대만여행기

by 오궁

대만이라는 곳은 여행지 목록에 없었다. 몇 년에 한 번 겨우 갈까 말까 하는 해외여행이니 이왕이면 멀고 근사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대만은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이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휴양지가 내 취향은 아니다만 동남아에 흔한 휴양지도 없다. 잘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은 생각이 굳이 들지도 않은 대만으로 이끈 것 중에 반 이상은 타이베이에서 근무하고 있는 같은 과 동기 B이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경영학과가 적성이었는지 대학원과 MBA를 졸업했고 은행을 다니다가 외국계 자동차 회사로 이직했다. 중국에 있나 싶더니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또 언젠가부터는 대만에서 CFO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이 알려주었다. 눈팅과 댓글은 직접 만나지 않은 사람도 만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나 대만 있을 때 놀러 와라. 맛있는 거 같이 먹자.”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지내는 많은 이들이 주변인들에게 하는 인사말일 터였다. 같이 사는 사람 한 명을 포함하여 70명이 넘은 대학 동기 중에서도 B는 같은 업계에 근무하기도 했었고 비교적 친한 사이여서 나는 그 인사말을 초대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민폐인가?’ 하다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한테 기꺼이 몸을 맡겼다. 나도 기회가 있을 때 갚으면 되지.

B가 예약해 둔 훠궈집에서 만났다. 훠궈로는 손에 꼽을 만한 집이라니 마음이 든든했다. 50대 아저씨끼리 좀 이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원래도 해사한 그의 얼굴에 걸린 환영의 미소가 그를 더 잘 생긴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여기 내 구역이니까 나만 믿고 맘껏 다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친구의 말대로 훠궈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출세한(!) 친구는 좋은 거 먹자며 추가 재료를 주문할 때 가격표를 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101 타워 주변을 걸었다. 6월의 대만은 이미 더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101타워가 보이는 테라스 카페에 나란히 앉았다. 대만 이야기, 사는 이야기,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잊고 지냈던 대학 동창들 이야기, 혹은 우리의 꿈 이야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30년 전에 만났던 꼬꼬마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여기 대만 타이베이의 한가운데서 만나 특별히 구애됨이 없는 상태로 밤바람을 쐬고 있으니 인생에 뭐 특별한 게 있나, 이런 게 찰나의 행복 아닌가 하는 말을 나누었다.

50이 다 되어도 20대 때 만난 친구를 만나면 스무 살이 된 것처럼 순진하고 유치해지더라. 마음은 몸이 늙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더러는 철없이 나잇값도 못하고 산다 싶다가도 마음이라도 젊게 살면 그게 또 좋은 것 아니겠나 싶다.

스무 살로 잠시 돌아간 우리는 그 뒤로 이틀을 더 만나 좋은 호텔에서 데판야끼도 먹고 틴타이펑 말고 현지인이 찾는다는 식당에서 딤섬도 먹고 야시장도 갔다. 출세한 친구 덕에 대만에서 호강했다. 몸도 마음도 입도…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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