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여행자의 일기 #2
다큐멘터리 출연자 모집
[이 글은 2016년말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다녀온 오로라 여행을 32편으로 기록한 글의 일부입니다.]
스마트폰에서 무심하게 페이스북을 보다가 아는 형의 타임라인에 멋있는 사진이 하나 떠 있었다. 오로라 사진이었다. 다른 분의 글을 공유한 것이었는데 오로라를 주제로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12월에 4박 6일 일정으로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싶은 "약간명"의 출연자를 찾고 있었다. 여행경비 일체 무료.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싶었다. 아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오로라를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차분히 내용을 읽었다. 선발기준이 눈에 띄었다. ‘다큐멘터리에 극적 요소를 더해 줄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분, 현재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거나, 혹은 스스로 그러한 전환점을 만들고 싶은 간절한 이유가 있는 분, 일생에 오로라를 꼭 보고 싶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분, 그 외 충분히 어필할 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분 중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분.’ 선발기준을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삶은 극적이지도 않고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라를 보고 싶긴 한데 아내의 로망이라는 것이 특별한 사유는 아닌 것 같고, 충분히 어필할 만한 스토리도 없어 보였다. 단 한 가지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는 확실히 없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다가 예능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라고 하니 뭘 꾸며서 부풀리기는 싫었다. 정공법을 택하되 양으로 승부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지원서라는 것도 결국은 글쓰기의 영역이니 그간 꾸준히 해 온 글쓰기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가끔 취미로 하는 일도 회사일 하듯이 치밀하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오로라를 보게 되면 무조건 아내와 봐야 하니 아내와 나의 지난 22년간의 스토리를 정리하는 식으로 담백하게 쓰기로 했다. 어차피 아내와의 이야기는 한 번 정도는 글로 남겨 두고 싶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거실에 혼자 내리 3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하여 A4 용지 10장에 가까운 지원서가 완성되었다. 적어도 아내와 나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마지막 부분에 너무 아내 이야기만 쓰면 허전할 것 같아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략하게 쓰려다가 길어졌다. 다 쓰고 나니 러브 스토리에 관심을 갖되 만약에 선정이 된다면 마지막에 쓴 내 이야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김칫국을 마신 셈이었다. 김칫국이든 된장국이든 아내에겐 발표가 날 때까지 비밀이었다.
[오로라 다큐멘터리 출연 지원서(일부)]
숨막히는 더위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광막한 해질녘의 사막,
숨소리마저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갑고 처연한 툰드라의 숲,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이 안되는 투명한 바다의 아름다운 빛깔,
시간이 멈춘 듯 거대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폭포,
처음과 끝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찰나와도 같은 섬광인 별똥별,
이런 자연의 경이로움을 대할 때 혼자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울까요? 누구라도 그 놀라운 경험을 함께 하고 싶은 첫번째 사람은 바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거에요. 사랑, 그 이유 하나면 충분하죠.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존재 자체가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어쩌면 그것은 자연의 놀라운 현상들보다 더 기적같은 일일지 몰라요. 앞으로 해외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 첫번째는 자작나무 숲에서 오로라는 보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추억 속에서 아름다운 먼 과거형으로만 존재하던 그 사람의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은 글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거든요.
우리는 1994년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같은 과에 동기생으로 입학한 것이지요.
(중간의 내용은 아내와 나의 22년간의 사랑 이야기인데 둘만의 소중한 이야기로 간직하기로 한다.)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그리워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벌써 22년이 되었어요. 같이 나라밖으로 여행 간 건 신혼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네요. 해외 여행이라면 비용 때문에 손사래를 칠 정도로 알뜰살뜰한 그 사람이지만 꼭 한 번 외국으로 간다면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해요. 편안한 휴양지보다 극한의 추위를 느끼는 곳에서 차가운 기운을 버텨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어요. 인간은 도저히 풀 수도 없고 재현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자연현상 앞에 맞닥뜨려 보고 싶다고도 했답니다.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지구별에서 태어나 만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 우연한 인연의 놀라움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뭔가를 쓰는 일로 그 사람과의 사랑을 확인했던 것 같아요. 현재 진행형인 그 사람과의 추억을 기록하는 일이 결실이 되고 오로라를 함께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냉담했던 20대에 나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아, 그러고 보니 여행일정 중에 첫키스 기념일이 포함되어 있군요. 오로라 아래에서 나누는 키스는 또 얼마나 달콤할까요...
저라는 사람은...
작디 작은 시골에서 자라 소위 개천에서 용-사이즈가 작은- 났다는 소리를 들으며 서울로 유학을 왔습니다.
적당히 공부를 잘 해서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또 적당히 대기업에 취업해서 여의도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15년째 무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같은 과 친구와 결혼해서 12살, 9살 난 두 딸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산층입니다.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전공인 국문학과는 무관한 일을 하다 보니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늘 아내에게 구시렁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15년을 했으면 적응을 할 만도 한데 말입니다.
아빠의 부엌이라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요리가 제대로 된 취미가 되고 제 2의 인생 설계의 테마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리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요리책만 300권 넘게 읽었습니다. 그 사이 '만만한 집빵'이라는 베이킹 에세이도 한 권 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전공을 이런 데서 살릴 줄은 몰랐습니다. 가끔 작은 잡지에 요리와 맛집에 관한 칼럼을 쓰기도 합니다. 5년 전에 세운 10년 대계에 따르면 5년 뒤엔 요리를 테마로 창업을 할 계획입니다. 몸에 맞지 않는 금융업에서 퇴직한다는 소원 성취를 준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까지는 계획에서 크게 틀어지지 않았지만 과연 5년 뒤에 퇴직할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제가 쓴 글을 통해 SNS에서 이웃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사진을 잘 찍는 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집에 있는 가구들을 대부분 직접 만들 정도로 목공 DIY도 즐겨 합니다. 여행도 좋아하지만 가장으로서 매인 몸이라 자주는 못 다닙니다. 다만 저의 역마살을 막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어진 아내의 배려 덕분에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는 평일에 당일치기로 제주에 다녀옵니다. 몇 년 전에는 3년에 걸쳐 제주도 해안도로 자전거 일주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중산층으로서 잘 살고 있는 편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중산층의 그럭저럭 무난하고 평범해 보이는 삶을 버리기에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퇴직 계획에 대해 아직까지 아내는 특별한 반대가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럴 때 저는 믿고 지지해 주는 것을 보면 20대에 보상을 바라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참으면서 적립한 노력이 보상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40년을 넘게 살면서 실패라는 것을 몰랐어요. 입시, 입사, 결혼, 출산, 육아, 주택구입 등과 같이 또래의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변곡점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밋밋한 삶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더 큰 변곡점이 닥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해 내성이 생기지 않은 우리 부부가 막상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도 됩니다. 그저 막연하게 '뭐 어때,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저 머나먼 우주에서 내려다 보면 티끌과도 같은 일일텐데 뭐가 두려워?' 하면서 위안삼고 있긴 합니다.
서울에서도 목동 언저리에서 살고 있지만 남들 하는 것처럼 아이들 교육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는 않고 있어요. 이 넓은 우주에서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 우리에게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 싶어 적당한 무관심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서울의 삶이 지겨워져서 늘 자연으로 돌아가는 꿈을 함께 꿉니다. 때가 되면 틈틈이 캠핑도 다니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우주쇼가 펼쳐질 때면 별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60킬로미터나 떨어진 강화도까지 해마다 달려갑니다. 언젠가 돌아갈 자연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함께 이런저런 시도를 조금씩 해보고 있습니다. 순탄하게만 살았던 우리의 삶에 5년 뒤 퇴직이라는 이벤트가 생긴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집니다. 앞만 보고 살았는데 문득 쉼표 하나 찍고 싶어 집니다. 우리 부부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싸울 일은 잘 없어요. 주로 아이들 이야기나 집안 일 이야기지만, 같이 읽었던 책 이야기나 삶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 아직도 단둘이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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