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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Dec 23. 2018

사과 한 박스

얼마 전 회사 동료 페이스북에서

소소한 퀴즈 이벤트가 있었다.

정답자에게는 사과 한 박스를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는데

어찌 하다 보니 내가 정답자가 되었다.

출제자는 사과가 나오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했고,

그 이후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그가 사과 한 박스를 차에 싣고

우리집 앞에 나타났다.

한 두 개만 주셔도 감사한 일인데

무려 한 박스인데다가,

사과는 상품 중에 최상품이었다.

저온 창고에서 숙성을 조금 하느라 늦었다고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리가요.


어릴 적 우리집도 사과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그 농장이 그리 크게 안 느껴지지만

어릴 땐 그 광활한(!) 농장 사과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무서울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다 일감이었기 때문에.

농사라면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이 없지만,

사과 농사도 만만치 않다.

가지치기를 시작하는 초겨울부터

꽃망울이 터지고 수정을 하는 봄을 지나

뜨거운 태양 아래 덩치도 키우는 여름을 거쳐

찬바람에 단단해지고 단맛도 끌어 올려 단풍색을 닮아가는

가을이 다 지나야 비로소 수확을 한다.

사과나무가 뿌리박고 자라는 땅에서부터

사과가 열리는 나뭇가지 끝 어디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게 애지중지 해서 키워도

여름이 가물거나 너무 덥거나

태풍이 오거나 우박이 내리거나

가을이 너무 춥거나 해서

작황을 망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뭇가지가 위태할 정도로

우람한 자태로 묵직하게 달려 있는

빠알간 사과가 그렇게 예쁘고 장할 수 없다.


경북 하고도 위쪽

주왕산 계곡의 찬바람을 맞고 단단해진 그런 장한 사과가

청송에서 왔다.


이렇게 좋고 귀한 사과를 받아

고마운 마음과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한 알 한 알 껍질마저 조심스레 벗겨

맛나게 먹으면서

청송의 산바람과

정성껏 키운 분과 선물해 주신 이의

고운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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