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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혼자 진주여행(1)

진주 갈 땐 고속버스를 타자.

by 오궁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은 순전히 내 마음이지만 그 와중에도 지역적 균형, 지형적 특수성 등을 고려한다. 참으로 이상한 자기검열이다. 누구 보라고 하는 여행도 아닌데. 내키는 대로 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지방 소도시 15개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니 제약이 생기더라. 진주는 원래 리스트에 없었다. 서부경남의 중심 도시를 소도시라고 부르기가 좀 미안했을 것이다. 오히려 진주 주변의 군 단위 지역을 가는 게 더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진주로 부른 것은 순전히 사람들이었다. 진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지만 다른 일정과 겹쳐서 참석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선약이 취소되면서 시간이 났고 이건 소도시 기행이 아니다 하면서 진주행을 결정했다.


진주라고 하면 관광지로서 마땅히 떠오르는 데가 촉석루 말고는 없으니 어쩌면 의외의 발견을 할 수도 있겠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진주는 창원과 함께 서부 경남을 대표하는 도시다. 한국지리 시간에는 교육의 도시라고 배웠다. 경상대, 진주교대, 연담대 등 대학들이 있고 인근의 시골 지역 인재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남해 출신 선배도 하동 출신 친구도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나왔다. 생활권이 달라 진주를 가 본 일이 없었지만 진주에 진주, 동명, 대아고등학교가 유명하고 그 학교들끼리의 경쟁이 진주지역 고등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린다는 걸 알게 된 건 보쓰라고 우리끼리 부르던 교장 선생님이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조회시간에 우리도 그들처럼 나사를 바짝 조이자는 이야기를 틈만 나면 해댔기 때문이었다. 진주는 어떤 곳이기에 소위 명문고가 세 개나 되는지만 궁금했다. 그들이 나사를 얼마나 바짝 쪼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도 터질만큼 바짝 조이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를 펴놓고 보면 진주 주변에 주옥같은 관광지들이 많다. 통영, 고성, 사천, 함양, 산청, 하동, 남해 등등. 진주는 그 도시를 가기 위한 일종의 베이스캠프나 중간 기착지 같은 곳이지 여행의 목적이 될 만하지는 않았다. 그래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 만나러 가는 거니까 그래도 괜찮아. 혼자 하는 여행이라 느슨해도 되지만 하루짜리다 보니 적어도 오전 오후 정도로는 나눠서 일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늘 그래왔듯 진주시청의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음…솔직히 동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가 볼 만한 곳은 진주성 하나 뿐이더라. (미안하다 진주시청 관계자분들) 오후 2~3시까지를 채울 만한 일정이 있어야 하는데 진주성 하나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한두 끼 정도는 먹어야 하니 진주냉면은 꼭 먹어야겠다 싶어 몇 군데를 추려 두었다. 여행 계획을 짜는데 옆에서 아내가 육회비빔밥도 먹고 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 육회비빔밥이 유명해? 몰랐네. 너는 요리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식당도 그렇게 많이 찾아 다니면서 진주에서 뭐가 유명한지도 모른다는 말이냐, 헛공부 했구나, 그럴 거면 집에 있는 요리책 다 버려라. 아내의 레파토리는 항상 요리책을 버리라는 말로 귀결된다. 남편들은 왜 항상 마누라들한테 혼이 날까. 육회비빔밥을 모르는 게 혼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육회비빔밥도 잊지 않고 챙기마.


서울서 진주를 대중교통을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KTX를 비롯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다. 기차는 기차대로 여행다움을 주지만 고속버스도 여러 면에서 괜찮은 선택지다. 화장실이 불편하지만 휴게소에 서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좌석이 기차에 비해서 안락해서 좋다. 그래서 기차와 고속버스의 시간 차가 크지 않다면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더구나 장거리 노선의 경우 일반, 우등보다 한 단계 높은 프리미엄급이 있어서 좋다. 가격은 KTX보다 저렴한데 좌석은 비행기 비즈니스 수준이다. 거의 눕다시피 할 만큼 뒤로 젖혀지고 옆 자리와의 간격도 넓은 편이어서 방해를 주고 받을 일이 없다. 개인별 모니터도 있고 휴대폰 화면과 미러링도 가능하다. 무선 충전도 된다. 그리고 화장실 문제를 얘기했는데 급하다고 벨을 누르면 바로 다음 휴게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차해 준다. 목적지가 부산이라면 고민이 되겠지만 진주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대전에서 곧장 무주, 함양을 거쳐 진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 비해서 대구부터는 고속철도 전용 선로도 아닌 데다가 김천, 대구, 밀양, 창원을 거쳐 빙 돌아가는 KTX와 소요 시간도 별반 차이가 없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한 번 타보면 우등까지는 내려가도 일반은 못 타게 된다.


6시 20분에 진주로 출발하는 프리미엄 고속버스에는 승객이 4명에 불과했다. 16만원이면 기름값과 톨비는 나올까 걱정하다가 승객을 더 끌어올 것도 아니면서 별 오지랖을 다 부린다 싶어 관두었다. 앉자마자 좌석을 최대한 뒤로 젖히고 잠을 청했다. 고속버스의 주행 소음이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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