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길
아내와 13년 만에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태어나서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주러 오시긴 했지만 아빠, 엄마 같지는 않을 테니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철없는 나는 나가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아내는 내내 불안했나 보다.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큰 편이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통씩 받을 수 있게 모두 16통을 썼다. 아빠 편지를 받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냐며 아내가 채근을 했다. 아이들한테 편지 쓰는 것이 좀 낯간지럽기도 했고 연애편지도 아닌 편지를 쓰는 일이 낯설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별달리 할 일이 없어서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이게 아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망측한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편지를 쓰지 말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말이 아니라 생각이 씨가 될 것 같아서 얼른 그 못된 생각을 거두어들이고 썼다. 총 8일 치 편지를 두 아이에게 각각 그것도 일이었다. 팔이 뻐근해지도록 쓰고 나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잘 접어서 집안 곳곳에 숨겨 두고 어머니에게 날짜별로 숨겨진 장소를 적은 쪽지를 드렸다. 아이들은 아침에는 아빠 편지, 저녁에는 엄마 편지를 찾아서 읽게 될 것이다. 나중에 아이들 말이 엄마 편지는 뭔가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적혀 있었고, 아빠 편지는 좀 감성적이라고 하더라. 제 성격과 기질을 다른 데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12살, 9살 아이들 눈에도 보이는 걸 보면.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대문을 열고 나설 때? 비행기에 타는 순간?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을 마침내 마주하고 있는 시간? 여러 번 해외를 다녀봐도 나는 인천공항 가는 버스를 탈 때가 제일 좋다. 물건이든 경험이든 가지지 못할 때 소중한 마음이 커진다. 막상 내 것이 되고 몇 번 쓰다 보면 이것 때문에 그렇게 안달복달했나 싶을 때가 많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막상 해외 가봤더니 별 거 없더라는 말이 잦은 것도 기대와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행지는 안 가 봤을 때 제일 멋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은 그런 간절감의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설렘과 기쁨이 최고조로 달한다. 버스 안은 집을 떠나왔지만 아직 해외는 아니다. 여행은 시작되었으되 버스 타는 걸 여행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그래도 집을 나섰으니 자유는 시작되었고 지금부터는 당분간은 계속 즐거운 일만 계속될 것이니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적어도 여행자라면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아내의 나의 설렘을 가득 실은 공항버스는 잘 닦인 고속도로를 내달려 40분 만에 우리는 공항에 그것도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주었다.
국제공항은 국경지대다. 출입국 관리소만 통과하면 우리나라도 너희 나라도 아닌 곳이 된다. 이쪽 국경을 넘어 저쪽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통과해서 출국 심사를 받는 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잘 오르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으니 그런 절차들이 문제가 될 리 없다. 사람들은 공항에서 자유를 느끼고 즐긴다. 회사원도 아빠도 아닌 국경을 넘어가려는 여행자로서의 자유를 나도 잠시 누린다. 아내와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했다. 일행과 미팅을 마치고 유심카드를 찾았다. 면세구역에 들어가서는 딱히 살 것도 없어서 미리 만들어 둔 PP카드를 들고 라운지를 찾았다. 빼놓을 수 없는 라운지 음식을 챙겨 먹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음악도 몇 곡 들었다. 책을 꺼내서 펼쳤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밴쿠버행 비행기는 지연 출발했다. 출국의 설렘으로 비행기 지연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10시간 가까이 태평양 상공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몸은 뒤틀리고 배는 불렀다가 조금 꺼졌다가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다. 좁은 공간에서 아내와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잠이 든 듯 안 든 듯 몽롱한 상태 속에서 이따금씩 아내의 손을 잡고 혼잣말을 했다. ‘너랑 함께여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