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_13화

by 무우지렁이

※ 공모전 출품을 목표로 집필 중에 있습니다. 중간중간 편집/보완되며 내용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응~. 왔어? 우엉차 한 잔 들고 근무시간 되면 하자."

"예."


유리는 입고 온 외투를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사이 반장 이모님께서 종이컵에 뜨거운 우엉차 한 잔을 부어주신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유리는 우엉차를 받아 들고 호호 불어 마셨다.


처음에는 차가웠던 이모님들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출근하는 유리를 보고 이제는 이모님들이 반겨주신다.


"하루, 이틀하고 도망가는 애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보라색 조끼를 입으신 이모님께서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다. 유리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힘들기도 하고.... 저도 그랬는데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세상 속의 아주 작은 부품 하나가 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금방 나가는 거 아닐까요?"


그러자 초록 조끼를 입으신 이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한다고 세상 속의 부품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따지면 전부 다 세상 속의 부품이지."


초록 조끼 이모님의 말씀을 반장 이모님께서 받아 이어 말씀하셨다.


"하지만 뒤집에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니까 세상이 윤택하게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 나는 내가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 한몫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데."


반장 이모님의 말씀을 보라 조끼 이모님이 맞장구치며 말씀하셨다.


"맞아. 그리고 반장 언니는 여기 일 하면서 자식들 대학도 다 보내셨고, 저기 분홍 조끼 입은 아가씨는 돈 모아서 이번에 전셋집도 얻었는 걸?"


보라 조끼 이모님의 눈짓을 따라가 보니 분홍 조끼 아가씨가 수줍어하며 배시시 웃는다.


전세 이야기에 또 한 번 속이 쓰러진 유리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공장 사람들의 말씀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유리였다.


"자자, 근무시간 됐다. 오늘은 비누곽 조립 및 포장이다. 모두 자기 자리 가자."


반장 이모님의 말씀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똑같은 조립 일인데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니 업무를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에 유리는 신기했다.


또한 스스로가 부품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위축되고 우울했었는데, 세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한 한 사람이라고 인식이 바뀌자 자존감도 올랐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믹스 커피를 한 잔 하고 잠깐 낮잠을 즐긴 후, 오후 근무도 마쳤다.


집에 가려는 데 아까의 분홍 조끼 아가씨가 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보니까 집 가는 방향이 같던데, 같이 가요."


엉겁결게 분홍 조끼 아가씨와 함께 집에 가게 됐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분홍 조끼 아가씨는 예의 그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제 또래 같으셔서요. 혹시나 전세 들어가실 거면 하나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말 걸어봤어요."


"뭔데요?"


"'전세보증보험'이요. 저 사실 이번 전세가 두 번째예요. 첫 번째 전세 살았을 때, 하마터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뻔했는데요."


유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유리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 둔 덕분에 전세금을 돌려받긴 했어요."


놀란 유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겁지겁 물었다.


"혹시 전세 만기 직전에 가입해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아, 저도 자세한 거는 잘 몰라요."

"아아....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일단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일도 생겼고, 희망도 생긴 유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홍조끼 아가씨가 말했다.


"혹시 유리 씨도 전세 사시나요?"

"네. 곧 만기네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속내를 내보일 순 없어 대충 얼버무렸다. 거짓말은 또 아니니까 괜찮다.


"저는 여기서 이쪽으로 가요."

"아, 저는 반대방향이네요."


잠시 후, 유리와 길이 갈린 분홍 조끼 아가씨는 작별 인사를 했다.


"오늘도 고생했어요. 내일 봬요~."

"아, 오늘이 마지막 근무에요.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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