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나와 경쟁할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의 나는 책임져야 하기에
모두 살면서 한 번쯤, 어쩌면 여러 번, 이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내가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까?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는 이런 생각이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프리즘"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실제로 구현된다. 프리즘이 가동되는 순간, 한 줄기의 물이 여러 갈래로 나뉘듯 새로운 갈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곳에서는 분기점이 되는 순간 다른 선택을 내린 또 다른 내가 살아간다. 따라서 프리즘 사용자들은 선택의 기회비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프리즘을 활성화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강력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매혹적이지만, 여는 순간 사용자는 질투, 후회, 집착의 감정에 휩싸인다.
프리즘이 자극하는 감정이 강렬한 이유는, 비교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I don't think I'm an envious person by nature, and I don't think you are, either. We're not always wanting what other people have. But with a prism, it's not other people, it's you. So how can you not feel like you deserve what they have?"
프리즘과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는 단체 심리치료 시간, 라일은 프리즘 속 자신을 질투하고 선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냇은 그가 본래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비교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내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 강한 박탈감과 후회를 느끼는 것이다.
프리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 버전의 개인은 상호의존적이며, 각자의 선택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두 버전의 개인의 심리를 게임이론을 통해 분석해 보겠다.
현실의 개인을 A, 프리즘 속 개인을 B라고 하자. 보통 게임이론의 플레이어들이 상대를 의식하여 특정 전략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A와 B의 존재는 이미 내린 선택의 결과이다. 따라서 A와 B의 전략은 “선택” 자체가 아닌, 선택의 “가치판단”이다. 선택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판단이 서로의 판단에 의존적인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두 죄수는 서로 상대를 고발할 것이라는 의심을 떨치지 못해 침묵 대신 고발을 택하고, 더 약한 형을 면하지 못한다. 이와 비슷하게, 프리즘으로 인해 분기된 두 버전의 개인은 모두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는 최선의 상황에 다다르지 못한다. 서로를 의식하여 궁극적으로 둘의 선택이 모두 “틀린 선택”일 때 안정을 찾는다.
먼저 A가 자신의 선택을 “옳다”라고 인식하는 전략을 살펴보자. 이 경우 B의 전략에 따라 A와 B의 선택이 모두 옳다고 인식될 수도 (1), A의 선택만이 옳다고 인식될 수도 있다 (3). 소설 속 프리즘 이용자들은 모두 (1)의 불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테레사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한 것이 옳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청혼을 승낙한 프리즘 속 자신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을 확인받고자 한다. 테레사의 결정이 옳았다고 느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리즘 속 테레사의 결정이 틀렸어야만 한다. 따라서 둘 다 옳다고 인식하는 (1)은 성립 불가하며, (3)만 성립 가능하다 (A의 "옳다" 전략 중에서).
다음으로는 A가 자신의 선택을 “틀리다”라고 인식하는 전략을 살펴보자. 이 경우, (2)와 (4) 모두 가능하다. 예를 들어, 라일은 이직한 자신과 달리 이전 직장에 남아 승진한 프리즘 속 자신이 옳았다고 느낀다 (2). 조지 역시 상사의 타이어에 펑크를 낸 자신과는 달리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프리즘 속 자신이 옳았다고 느낀다 (2). A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B가 틀렸음을 증명해야 했기에 (1)은 불가, (3)만 가능했다. 하지만 A가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 느끼기 위해서 B가 옳았다는 증거는 필수가 아니다. A와 B 모두 틀렸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로우를 총살한 올센 부인의 아들은 어차피 다른 버전의 자신이 총을 쐈다면 자신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며, 총을 쏘는 "틀린 선택"을 내린다 (4).
여기까지 프리즘 사용자의 페이오프 매트릭스에서 (1)을 제외한 (2), (3), (4) 경우만 가능한 것을 알아봤다. "옳다" 전략의 경우의 수는 비록 (3)밖에 없지만 가능한데, 왜 내쉬 균형은 여전히 (4)인 것일까? "틀리다" 전략의 인센티브가 "옳다" 전략보다 크기 때문이다.
"옳다"의 경우: (3)의 개인은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낄 수 있지만, 차츰 불안에 휩싸일 수 있다. 테레사의 예시로 돌아가, 그녀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프리즘 속 자신을 찾았다고 가정하자. 테레사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한 결정이 옳았다는 순간적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결혼과 아예 맞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어쨌든 프리즘 속 테레사도 그녀이기에, 자신이 불행한 모습을 목격하면 현실에서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틀리다"의 경우: 최악인 것 같은 (2)는 의외의 메리트가 있다. 현실에서의 자신은 틀린 결정을 했음에도 프리즘 속 자신이 옳은 결정을 한 것에 위안을 삼는 것이다. 프리즘 속 그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성을 미화하는 조지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줄이기에 유혹적이다. (4)도 마찬가지의 메리트가 있다. 프리즘 속 자신과 현실의 자신 간의 도덕적 격차가 크지 않을 때, 자신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올센 부인 아들처럼 프리즘 속 자신과 현실 속 자신이 똑같이 틀린 결정을 내렸으니, 그것이 본래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며 안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옳다" 전략은 불안을 유발하는데 비해, "틀리다" 전략은 현실의 책임과 옳아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이용자를 해방시킨다. 따라서 프리즘 이용자는 “틀리다” 전략을 취하며,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지함에도 안주하는 (4)에서 균형을 찾는다.
이와 같이 프리즘 이용자들은 궁금증 해소에 대한 대가로 혜안을 얻기보다 자기 합리화의 굴레에 빠진다. 다행인 것은, 다른 게임이론의 플레이어들과 달리 프리즘 이용자들은 플레이어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스스로 끊을 수 있다. 프리즘을 열지 않고 현실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플레이어들 [프리즘 속 버전의 나]을 없애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배전략"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즘이 매번 남용되는 것은 아니다. 프리즘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미 만들어진 프리즘을 들여다보며 과거의 결정을 후회하기보다, 앞으로 만들어질 프리즘 속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현실의 내가 더 많은 "옳은 선택"을 내리자고 다짐하는 것이다.
"But the question was, given that we know about other branches, whether making good choices is worth doing. I think it absolutely is. None of us are saints, but we can all try to be better. Each time you do something generous, you're shaping yourself into someone who's more likely to be generous next time, and that matters.
And it's not just your behavior in this branch that you're changing: you're inoculating all the versions of you that split off in the future. By becoming a better person, you're ensuring that more and more of the branches that split off from this point forward are populated by better versions of you."
현실 세계에 프리즘은 없지만, 많은 이들은 마치 프리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선택을 물고 넘어지고, '어차피 나는 이런 결정 밖에 못해'라고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한다. 테드창은 프리즘을 통해 이런 우리의 모습에 돋보기를 씌우고, 반성을 이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는 흘려보내고,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내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