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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Oct 22. 2023

위기 탈출 넘버원



위험을 알리는 펜스 너머로 파도가 넘실거렸다. 마구잡이로 쌓인 방파제의 진로방해로 우리는 항구에 서서 파도가 오고 가는 길을 지켜볼 수 있었다. 구태여 그 펜스를 넘어 방파제 끝으로 걸어간 사람들은 낚싯대를 생명줄처럼 잡고 버티고 있었다. 파도가 몇 번의 으름장을 놓는 동안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엉킨 낚싯줄이 발에 차이고 페트병과 쓰레기가 아무렇지 않게 둥둥 떠다니는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랫소리가 들려 펜스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파제뿐이었다. 방파제 틈 사이로 파도가 들이쳤다가 사라지길 반복했고, 바람도 박자에 맞춰 곧 뒤를 따랐다. 그 리듬대로 소리가 났다. 언뜻 누군가의 노랫소리 같기도 악기 소리 같기도 했다.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시작된 소리는 방파제를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과속과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떴다 떴다 비행기를 부르는, 노래하는 고속도로 같은 역할일까. 동시에 좋아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라고 하면 단골처럼 따르는 질문이 있다. “사진 전공하셨나 봐요?” 사진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도 한다. “어디 사진과 나왔어요?” 사실 이 부분은 꽤 오랫동안 내 콤플렉스였다. 답이 NO이기 때문이다. 사진과 카메라를 다루는 전문지 에디터라고 하면 당연히 사진을 전공했을 거라는 어떤 편견이 있다. 나 역시 첫 회사에서 서류 전형에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기 전까지 같은 생각이었다. 당시 나를 합격시킨 사람은 수석 에디터였던 첫 사수였다. 그는 나를 제외하고 이 매거진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유일한 비전공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꽤 오래 사진을 취미로 찍어왔고 카메라 덕후라는 점이었다. 전문지에서 살아남으려면 전공자이거나 덕후여야 하는구나. 전공은 어찌할 수 없으니 나는 열심을 다해 덕후가 되기로 다짐했다.



사진작가가 분야나 주제에 맞춰 사진을 찍는다면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는 장비에 맞춰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매거진 에디터가 장비가 가진 기능이나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꽤 전문적인 수준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DSLR을 사용했지만 줄곧 자동 모드로만 사진을 찍었다. 기획된 사진보다는 일상이나 여행에서 우연에 기인한 사진을 주로 담아왔기 때문에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역대 A컷만 모아 놓은 포트폴리오로 카메라 전문지에 에디터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첫 매체에는 갓 입사한 신입이 선배 촬영에 따라 나서 장비를 위한 사진을 촬영할 때 촬영 포인트에 대해 배우는 관습이 있었다. 그날 촬영한 결과물을 리뷰하던 수석 에디터의 얼굴에서 “망했다”라는 표정을 읽었다. 화이트 밸런스가 뭔지, 셔터 속도를 확보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조차 모르는 사진, 카메라 문외한이 입사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 내게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를 물으면 어김없이 이날을 떠올린다. 그때만큼 진심을 다해 사진을 배우고 찍었던 적이 또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사수는 종이와 펜을 들고 졸졸 따라다니는 내게 많이 보고 많이 찍는 수밖에 없다 가르쳤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새로운 촬영 앞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문제는 과몰입이었다. 새로운 분야를 촬영할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도전!을 외쳤다. 열심히 하면 덕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다만 매거진은 비주얼적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결과물에 대한 압박은 나날이 늘어갔고, 찍는 재미에 빠져 모든 다 해낼 수 있다 믿는 사이 나는 끝을 외치는 법을 잊어갔다. 



어떤 달에는 별의 일주 운동인 별 궤적 테스트 사진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별 궤적을 촬영하기 좋은 조건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구름 없이 맑은 날 달도 인공광원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적어도 2-3시간가량을 촬영해야 했다. 날은 한겨울로 치닫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남양주의 한 공원에 도착했을 때 자동차 계기판에 뜬 밖의 온도는 영하 18도였다. 체감 온도는 시베리아였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며, 어깨를 펴고 입으로 나는 덥다를 다섯 번쯤 외쳤을 때 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거렸다. 결국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차로 돌아가 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발이 시린 날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누가 카메라를 가져가진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확인하러 가보니 카메라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카메라도 영하의 날씨에 사시나무 떨듯 덜덜거리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전사해 버린 것이다. 당시 편집팀 에디터가 마감만 되면 주기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에디터는 어떻게든 해내는 직업이고 마감은 결국 끝이 있다. 별 궤적 촬영 조건에 부합하는 다른 날 이번에는 더 확실한 장소로 철원의 노동당사를 골랐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이라 아무도 없었고, 옆 군부대에서는 우리 차를 포함한 지나가는 수상한 차량을 불시검문했다. 영하 16도. 카메라가 추울까 핫팩을 올려주고 카메라 주위를 맴돌며 추위를 이겨냈다. 사람은 온기를 조금 더할까 하다가 사람이 카메라처럼 장렬히 전사할 뻔했다는 사실만 빼면 완벽한 촬영이었다. 



한 번은 기획상 넓은 일몰 풍경을 담아야 했다. 일본 대마도로 여행을 갔을 때 산 정산에서 내려다본 섬 풍경이 떠올랐다. 충주에도 비슷한 곳이 있었다. 악어섬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은 정식 등산로는 아니었지만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해 사람들이 드물게 산길을 오르내렸다. 자연스레 산길이 생겼지만 바로 옆이 낭떠러지로 위험한 구간도 곳곳에 존재했다. 문제는 필요한 사진이 일몰 풍경이었다는 데 있었다. 등산의 ㄷ자도 모르는 나는 산의 해가 그렇게 빨리 저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멋진 풍경에 취해 산 정상에서 “조금만 더!”를 여러 번 외치다 해가 거의 넘어가서야 남편의 손에 이끌려 황급히 하산을 시작했다. 당연히 사람은 없었고 스마트폰 플래시에 의지한 채 험한 길을 엉덩이로 기어 내려왔다. 그때 남편이 촬영 메이트로 동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 생사를 보장받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외에도 휴양지 해변에서 별 사진을 촬영하다가 모기떼의 공격에 다리가 초토화된 적도 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DMZ에 들어갔다가 독수리를 목격한 적도 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나니 몸도 마음도 성할 곳이 없었다. 몸을 사리지 않았던 촬영 스토리를 풀자면 위기 탈출 넘버원 프로그램을 정식 편성을 받아도 될 정도니. 그런 촬영에 이골이 날 때쯤 국내 유명 천체 사진작가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장비의 발전이 아마추어도 꽤 그럴듯한 사진을 찍게 만든다는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아마추어와 사진작가의 차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당시 나는 특정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추어 격으로 사진을 배우고 찍고 콘텐츠에 활용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전문가는 똑같은 사진을 완성하기까지 컷수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천체 사진처럼 변수가 많고 한 장을 담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일수록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열심이 전부가 아니었다. 덕후는 다방면에서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다. 그 뒤로 전문 촬영 영역은 사진작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내가 위기 탈출 넘버원을 촬영하며 고군분투하는 사이 그들은 이미 A컷을 촬영하며 장비를 테스트하고 또 다른 A컷을 찾아 떠날 테니까. 결국 나는 전공자도 덕후도 아닌 많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에디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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