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에디터로 일하던 친구가 대뜸 해외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과 대화를 좋아해 인터뷰 전문 에디터가 되겠다던 친구였다. 그때 우리는 에디터가 된 지 이제 막 3년 차를 지나고 있었다. 전후 사정을 깊게 묻진 않았다. 업무 강도는 높으나 고액 연봉이나 개인의 삶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 업계의 관행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해외로 떠나기 전 같이 독서모임을 하던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는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책장 정리를 시작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니 건네고 싶은 책이 있더라, 다정을 덧붙였다. 그의 얼굴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의 미련 없는 미소를 봤다. 내게 그 친구의 초상은 여전히 이 장면으로 남았다.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 그때 그 친구의 미소가 천고처럼 느껴질 때면 이 책을 펼쳤다. 육명심 작가는 문학계, 음악계, 미술계를 막론하고 당대의 예술가를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에 몰두한 사진작가다. <문인의 초상>은 그의 1970년대 초반 사진 작품 중 문학편만 추려 놓은 사진 에세이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71명의 초상사진과 그들을 만났던 사연이 담겨 있다. 에디터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인터뷰를 갔을 때 선배는 인터뷰 사진을 찍는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인터뷰어가 따로 있다면 인터뷰 도중 자연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찍고 인터뷰가 끝난 뒤 프로필 사진 형식으로 몇 장을 더 찍으면 된다 배웠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터뷰어와 사진 촬영을 병행해야 할 때는 인터뷰이에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 더 말해달라 요청해 자연스러운 컷을 촬영해야 했다. 매체 특성상 정해진 틀이 있었고 기계처럼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
<문인의 초상>은 달랐다. 틀이 정해진 인터뷰 사진이 증명사진이라면 이 책에 담긴 사진은 초상사진에 가까웠다.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촬영한다는 의도는 같았지만 육명심 작가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내가 촬영해 온 인터뷰 사진은 사실 사진상의 얼굴이나 모습만 바뀔 뿐 정형화된 틀이 존재했다. 누가 와도 그 틀은 깨지지 않았다. 그만큼 개개인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했다. 육명심 작가의 사진은 그 사람에게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즉, 초상이 담겼다. 미소나 포즈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서재 앞 책상에 앉아 고뇌하는 모습이나 골목에서 외투를 손에 들고 무심한 표정으로 촬영한 사진, 풀밭 한가운데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사진까지. 사진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과 인이 여실히 드러났다. 구태여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사진 자체가 이야기였으니까.
친구는 이 책을 내밀며 한국잡지교육원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연재 인터뷰 기사를 말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담는 좋은 에디터가 됐으면 한다고. 당시 한국잡지교육원 수료를 앞두고 의미 있는 기획 기사를 하고 싶던 차에 60세 이상 연극인의 활동 연장을 위한 공연 밖 프로젝트 <옆집에 배우가 산다>를 만났다. 이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극장이 아닌 배우의 집 또는 지역 문화시설, 편의시설에서 배우가 자신의 대표작이나 자작극을 1인극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총 5명의 배우가 참여했고 다섯 개 공연 모두를 예매했다. 어쩌면 발로 뛰며 진짜 인터뷰를 경험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독특하게 배우의 계좌로 직접 입금하고 관람을 안내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배우가 운영자이자 배우이자 스태프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배우의 번호를 알게 됐고 인터뷰 요청이 한결 수월했다. 사실 이때 나는 인터뷰는 물론 사진에도 문외한이었다. 인터뷰 사진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다. 조명?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담는 데는 진심이었다.
김동수 배우의 <인생>과 박정순 배우의 <아버지의 불매기>는 모두 배우의 집에서 진행됐다. 김동수 배우는 티브이가 놓인 거실 벽면에 <옆집에 배우가 산다> 신문기사를 오려 붙이고 대여섯 개 남짓 방석을 깔아 그럴싸한 공연장을 꾸렸다. 터덜터덜 선풍기가 돌아가고 그가 손수 내온 음료병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장면은 공연만큼이나 선명하게 남았다. 직접 설치한 전등을 자랑하던 김동수 배우는 암전 한 번으로 주인공 귀복이 됐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귀복이 자신의 지난 삶을 한 구절 한 구절 읊어갔고 성우 출신 배우답게 목소리로 여러 역할을 극에 담았다. 중간중간 트라이앵글과 놋그릇, 종을 치는 소리가 장면의 전환을 알렸다. 나는 인터뷰 기사에 쓸 사진으로 그가 여러 표식을 남겨가며 외웠던 대본, 직접 장면의 전환을 알렸던 도구가 올려진 테이블, 터덜터덜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인생을 말하는 김동수 배우의 사진을 골랐다.
박정순 배우는 연극이 끝나자 땀으로 흥건한 셔츠를 갈아입고 금정산성에서 공수해 온 막걸리와 동네 구멍가게 대표 과자를 내왔다. 거실에 마련된 나무의자 객석을 치우고 열명 남짓한 관람객이 동그랗게 둘러앉자 순식간에 인터뷰회장이 되었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소품을 만들고 무대를 꾸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손에 이끌려 거실과 이어진 작은 방으로 가자 백스테이지가 드러났다. <아버지의 불매기>는 박정순 배우가 옷과 소품을 바꿔가며 1인 다역을 해냈는데 그때마다 배우는 백스테이지에서 나왔다. 직접 음향을 조절하도록 설치한 음향 기기 뒤로 무대에서 봤던 옷, 소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땀나는 무대 뒤편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외에도 그가 오래된 신문을 벽에 붙이고 나무판자에 직접 쓴 글씨를 걸어 만든 무대, 극의 소품으로 등장했던 원고지에 붓펜으로 써 내려간 대사 한 구절을 촬영했다.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며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사진을 더해 인터뷰를 꾸렸다. 사진만 보더라도 이 연극이 어떻게 준비됐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그들의 초상 그 자체니까.
<문인의 초상>을 본 뒤로 인터뷰 사진의 틀을 지웠다. 대신 이야기를 담았다. 어쩔 수 없이 정형화된 틀을 써야 하는 중요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먼저 듣고 면밀히 살피고 이야기를 남겼다. 사진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순 없더라도 적어도 인터뷰에 담긴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자. 그게 사진의 역할이다. 그렇게 믿었다. 나에게 <문인의 초상>을 선물했던 친구의 마지막 미소가 그 친구를 기억하는 초상이 된 것처럼 사진 한 장이 주는 이야기는 때때로 글보다 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