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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Oct 19. 2023

응 이거 광고 콘텐츠야!



2023년 5월, 한 펀딩 사이트에서 반가운 소식을 발견했다. 엠알케이의 귀환. 엠알케이는 1998년 5월에 출간돼 약 10여 년간 90년대생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매거진이다. 동시에 내 생애 첫 매거진이기도 하다. 한 달간 용돈을 꼬박 모아 매달 엠알케이를 사는 데는 부록처럼 붙은 편지지의 역할이 8할이었다. 꼭 모든 편지지에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됐다. 종이를 오리고 붙여 독특한 형태의 편지지를 만들고 이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데 의의를 두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편지지에는 귀여움을 담당하는 콩콩이와 여신을 담당하는 발렌같이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캐릭터의 특징 자체를 활용한 편지지도 많았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 혹은 제과 제품을 패러디한 재미난 편지지도 많았다. 그때는 콩콩이와 발렌 캐릭터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영화를 패러디한 편지지다. 정확히는 영화 제목. <공동경비구역 JSA>, <봄날은 간다> 등 영상물 상영 등급 제도로 인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보지 못하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영화 제목이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애드버토리얼의 힘이란 실로 대단하다. 



애드버토리얼은 광고와 기사가 합쳐진 단어로 신문이나 매거진 따위에 기사 형태로 실리는 홍보 광고를 의미한다. 당시 콩콩이와 발렌을 필두로 패러디된 편지지 중 일부가 광고였다는 사실은 20여 년이 지나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21세기의 대부분 콘텐츠는 광고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만약 광고 없이 매거진이 발행된다면 이는 두 가지 경우일 테다. 대기업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혹은 경영자의 취미로 자본을 투자해 적자를 보더라도 매거진을 발행하거나, 그도 아니면 독자가 매거진 한 권을 구입하려면 단행본만큼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유튜브 콘텐츠를 광고 없이 보기 위해 프리미엄에 가입하고, 프로그램 사이사이 광고를 봐야 하는 티브이와 달리 광고 없이 좋은 콘텐츠를 보기 위해 구독료를 내는 OTT 서비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내가 몸담았던 매거진은 모두 독자에게 높은 가격을 요하기보다 브랜드 광고를 진행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곧 기사의 주인이 매체나 에디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부분 브랜드가 매체의 방향성을 존중했지만 개중에는 매거진 발행 전 기사 검열을 요청하는 브랜드도 있었다. 콘텐츠팀과 광고팀의 일이 분리돼 돌아가는 판이면 좋겠지만 내가 몸담았던 전문지는 모두 광고팀 산하에 콘텐츠팀이 있는 구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매거진의 수익이 모두 브랜드 광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군말 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하는 주니어 에디터일 때는 괴리감이 컸다. 하고 싶은 것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하는 걸 해내야 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에 송강호와 이병헌 대신 콩콩이를 그려 넣고 있는 엠알케이 에디터, 디자이너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들도 초등학생에게 온전한 콩콩이 편지지를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애드버토리얼을 해냈을 테다.



어쩌면 매너리즘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카메라 신제품은 광학, 전자 기기고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최근 각종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기술이 대두되고 있는데, 카메라에는 피사체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춰주는 기능에 AI 기술이 접목돼 있다. 딥 러닝을 통해 많은 양의 사진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피사체를 자동으로 추적해 초점을 맞춰준다.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 동물, 새 등 다양한 피사체 설정도 가능하고 해당 피사체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을 정확히 찾아낸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카메라가 알아서 초점을 맞춰주는 정도다. 카메라 신에 이러한 기술 하나가 등장하면 브랜드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해당 기술을 활용한 기능을 내놓는다. 선두만 있을 뿐 모두 같은 트랙을 달린다. 



매달 신제품을 테스트하고 리뷰를 작성하다 보면 간혹 싸할 때가 있다. 내가 지난달 달렸던 트랙을 또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보면 어김없이 같은 기능을 가진 타 브랜드의 카메라 기획 기사에 비슷한 문구를 쓴 흔적을 발견한다. 브랜드가 강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은 거의 비슷하고 독자는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원한다. 카메라처럼 기능이 많은 제품이라면 기획을 조정하고 방향성을 바꾸겠지만 삼각대, 가방처럼 단순한 액세서리류라면 매번 새로운 관점으로 제품을 들여다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기계처럼 기계 리뷰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연차가 쌓이면 머리가 아닌 손이 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더니. 이게 그거였나? 헷갈리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는 콘텐츠를 읽은 독자가 그게 광고였어?라고 반문할 만큼 애드버토리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기사를 지향했다.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의 뒷광고 논란이 있은 뒤부터는 모든 광고 콘텐츠는 반드시 광고임을 밝혀야 한다. 이제는 응 이거 광고야! 가 된 셈이다. 대신 뒤에 한 마디가 더 따라붙는다. 광고임을 밝힐 만큼 유익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보답할게. 우리도 <공동경비구역 JSA> 옷을 입은 콩콩이 편지지가 필요했다. 독자의 머릿속에 브랜드 제품은 강렬하게 인식시키면서도 독자가 흥미롭게 받아들일 콘텐츠. 



당시 우리 매거진은 리뷰 잡지라 불릴 만큼 리뷰의 비중이 컸다. 더는 관성으로 콘텐츠를 끌고 가지 않으려면 리뷰를 벗어던질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광고팀 산하에 콘텐츠팀이 있을 때는 브랜드 광고를 위해 독자에게 브랜드 콘텐츠를 전해야 했다. 때문에 애드버토리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더는 이러한 콘텐츠가 먹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광고팀을 설득해 콘텐츠팀에도 힘을 실어주길 당부했다. 대신 광고가 끊기지 않도록 브랜드와 콘텐츠를 잘 조율해 보겠다고. 독자에게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광고를 이용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결론적으로 그 방향이 브랜드에게도 득이 될 테니까. 당시 브랜드는 하나의 신제품이 나오면 애드버토리얼을 단발성으로 진행했다. 신제품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광고에 공백이 생겼고 이건 광고팀에서도 곤란해하는 부분이었다. 브랜드, 매체, 독자 모두가 윈윈 하려면 신제품 하나당 몇 달에 걸쳐 이슈를 끌고 갈 콘텐츠 사이클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닿았다. 



브랜드 리뷰-기획-기획 세 달 사이클을 택했다. 신제품이 발표되기 전부터 거의 매달 브랜드 매니저와 미팅을 했다. 신제품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를 듣고 브랜드 리뷰의 방향을 잡았다. 대신 기획 차례에는 브랜드 대신 시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신제품에 대한 정보와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했다. 이를 토대로 독자들이 신제품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았다. 그 강점을 돋보이게 할 기획 기사를 진행했다. 새의 눈동자를 추적하는 기능이 업데이트된 카메라가 출시되었을 때 브랜드 입장에서 새 눈동자 추적은 하나의 기능에 불과했다. 브랜드 리뷰에서는 이를 포함해 카메라가 가진 성능과 기능을 풀어주며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던졌다면 기획 텀에는 이 하나의 기능에 집중해 탐조인을 타깃으로 ‘새의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카메라 전문지 에디터는 모두 사진을 찍고 글을 썼는데,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울 때는 전문 작가진의 입과 손을 빌렸다. 여러 차례 이 사이클로 애드버토리얼을 진행하며 깨달았다. 광고 기사를 뜻하는 애드버토리얼은 광고와 기사 중 어디에 힘을 주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콘텐츠가 탄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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