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준비된 이별로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하라.
퇴직은 나이순이 아니다, 떠나기 전에 준비하라.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1980년대 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개봉하고, 유행어처럼 그 제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그럼 행복은 무슨 순서일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확실한 건 퇴직은 나이순도, 입사순도 아니라는 것이다. 들어오는 것은 때가 있으나 떠나는 것은 때가 없고, 순서가 없는 시대가 왔다. 언제 떠나야할 지 모르는 직장에서, 그냥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창업을 하지도 말라고 하니, 그럼 어쩌 란 말인가? 이제는 전 재산 털어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자영업 창업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직을 준비해야한다.
회사에 모든 걸 다 걸고, 회사만 바라보고 나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다고 회사가 나의 퇴사 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조금 더 냉정해지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가능 하지만, 대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입사해서 임원이 되는 비율은 0.47%라고 한다. 1,000명이 입사해서 임원이 되는 경우는 5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임원은 고사하고 부장으로 승진되는 경우도 1,000명 중에 24명에 그친다. 어렵게 임원이 된다 해도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임시직 아래 임원’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별 따기로 임원의 자리에 오른다 한들 임원이 되는 순간, 근로자의 지위를 잃게 되고 사용자 신분으로 인정되기에 언제라도 정리될 수 있는 낙엽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그저 막연한 기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앞만 보고 달려 가기에는 너무나 안전장치가 없다.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가는 상황이 오기전에 준비해서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대책 없이 책상을 박차고 나오라는 것이 아니다. 내일 사표를 던져도 당당하게 걸어 나올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영원한 직장은 없다. 자신이 영원히 직장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떠나서, 요즘은 직장 자체가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 자신이 나이를 먹거나 실적이 좋지 않아서 등 떠밀리는 경우 말고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가 사업을 정리하든, 회사에서 나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든, 내가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하는 상황이 오게 되든, 그냥 해고나 사퇴 말고 이별이라 생각하자. 일말의 미련도 두지 말고 더 좋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운 이별은 준비된 이별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결별을 해야 한다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헤어짐 일 것이다.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준비된 이별을 하자. 쓰고 보니 무슨 상조회사 광고 카피 문구 같지만, 직장에 마지막 출근을 하고 떠나는 순간부터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없어지면, 자신이 먹고 마시고 숨쉬는 모든 시간이 비용이 되는 것이다. 매 순간이 기회비용이 되고,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처럼 시간이 흘러가면, 퇴직 후 한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초조해기 시작하고, 그 초조함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여기저기 마구자비로 이력서를 날리기 시작하고, 어느 곳으로부터 아무런 답도 듣지 못하면, 더욱 초조해지고 판단력은 저하된다. 급기야는 퇴직금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흐려진 판단력은 잘 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잘 못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고 쓰러트리고 만다.
자신이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 기회비용이 아니라 수익이 되게 만들어 놓고 직장을 떠나야 한다. 회사에 있는 동안 기술 빼내서 뒤통수 치고 나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근무 시간에 자기일 하면서 퇴직 준비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퇴근 후 시간을 쪼개고 불필요한 시간 소비를 없애고, 나를 관리하며 미래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퇴직후에 시간을 기회비용이 아니라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으면, 유연한 자세로 좀 더 맑은 정신으로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해 나갈 수 있다.
50대 초반의 한 지인은 회사에서 그를 퇴직을 시키기 위해,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시킨 후에 그 달에 바로 퇴사를 종용했고 결국은 회사의 압박으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부장 직책으로는 근로자 신분이기 때문에 부당 해고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니, 근로자가 아닌 사측으로 구분되는 임원으로 승진을 시킨 후에 바로 압력을 넣어 퇴사를 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회사라는 우산 속에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살아온 그는 회사밖의 현실의 세계로 홀로 떨어져 나왔다. 퇴직 후 두 세 달을 집에서 보낸 그는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프랜차이즈 창업 설명회에서 소위 말하는 꾼들의 설명에 넘어가서 잘 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꾀임에 넘어가 잘 못된 상권에 잘 못된 권리금을 주고 인테리어, 시설 투자를 하고 불과 3개월만에 4억이넘는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가게를 접고 말았다. 권리금 1억 5천, 인테리어 1억 5천, 프랜차이즈 관련 초도 비용 3천, 첫 3달 운영 적자 4천 7백, 기타 부동산 수수료 등의 비용과, 몇 달 동안 점포를 빼지 못해 보증금에서 매달 900만원씩 손해를 봤다. 3달만에 가게문을 닫고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모두 날리고 무권리로 몇 달 만에 가게를 빼고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서 한 달에 200만원씩 써도 어림잡아 20년은 쓸 수 있는 평생 모은 돈을 단 3개월만에 모두 날렸다.
이런 일이 남의 일 같고, 자신에게 저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내일 퇴사를 해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걱정이 없을 만큼 탄탄하게 준비해야 한다.
회사 타이틀이 없는 나는 무엇인가?
필자는 미국에서 외식사업을 하기 전에 이미 스위스의 호텔 식음료 사업부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 미국 테네시 주에 있었던 당시 세계 2위 규모의 호텔에서 F&B 매니저로도 근무했었다. 삼성 에버랜드의 외식사업 기획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음식점을 창업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에 비해 자신감이 있었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호텔, 관광 관련 학교도 나오고, 영어도 문제가 없었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기획력과 추진력도 있었기에 나름 이역만리 타향에서의 사업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생의 첫 사업이었던 학원 사업이 크게 성공했기에 더욱 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자신감이 앞섰다.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인 새크라멘토 북쪽 신도시에서 첫 번째 사업장을 오픈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교민 자영업자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지금 필자가 다른 이들에게 죽어도 창업하지 말라고 말리듯, 미국에서의 장사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며, 절대 장사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좀 도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열을 올리며, 장사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들을 설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의욕이 충만했던 나에게는 전혀 남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경험도 없이 뭘 믿고 미국에서 음식장사를 하려 하냐고 다그쳤고, 나는 나의 경력과 학력,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 있다고 되받았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지금도 뇌리에 명확하게 기억이 남는 말을 했다.
“큰 조직에서 조직의 타이틀을 등에 업고 직원들을 관리했던 경험은 다 잊어라, 자영업의 직원 관리는 대기업에서 직책을 갖고 관리하던 것과는 완전 반대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머리속에서는 이해가 되는 듯했지만, 마음속에서 받아들여 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음식점을 시작하고 매장을 늘리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직원 관리였다. 한국보다 더 심각한 고질적인 구인난을 겪고 있는 미국 외식업에서의 직원들은 사장 위의 상전 중에 상전이었다. 하루 하루가 인력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기 때문에 직원들 눈치 보며 비위 맞춰가며 매장을 이끌어 나가야 했다. 백인들 캐시어나 웨이트리스들은 자신이 피고용인이고 나는 고용주임에도 자신들이 백인이고, 자신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고 오히려 주인인 나를 가르치고 부리려 들었다. 불법 체류자 멕시칸 친구들은 영어를 못해서 의사소통을 하려면 한 바탕 쇼를 해야 했고,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오히려 내가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공부해야 했다. 외국 나가서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라고, 한국 아주머니들은 영어도 한마디 못하고, 일도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시로 급여는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직원들 모자라서 쩔쩔매면 그 약점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꾀를 부렸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해고하고 다른 사람을 뽑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동양인 주인이 직원을 구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로소 그때야 마음속에서 깨달았다. 대기업에서 직원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 상사 자체가 아니라, 큰 조직에서 누리는 것들에 대한 불이익을 얻을까 두려운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오늘 지금의 직장을 박차고 나가면, 내일 같은 조건의 직장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직장의 타이틀이 없는 나는 무엇인가? 어떤 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비단 조직 내부의 관리 문제뿐만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더욱 더 기업의 명함이 보호막이고 방패 역할을 한다.
대기업에서 자신의 영업 능력을 자만하며, 자신의 거래처와 인맥을 자만하며, 조직을 뛰쳐나와 창업을 하면, 그때 조직의 타이틀이 없는 자영업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조직을 떠날 마음을 먹을 때는, 조직에서의 타이틀이 없는 명함, 조직의 로고가 없는 명함으로 전쟁터에서 싸울 준비를 끝내고 떠나야한다. 조직이 나의 우산이 아닌 자신의 브랜드가 자신의 바람 막이며 방패가 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큰 조직에서의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무모한 창업을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코닥’의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요즘 학생들이나 청년들은 코스닥은 알아도 코닥은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출시되기 전 필름을 집어넣는 아날로그 카메라 시절 1888년도부터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날로그 카메라와 카메라 필름 시장을 장악했던 절대 강자였다. 한 때는 미국 필름 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점유했던,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요지부동의 강자였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오고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인 필름 카메라와 필름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하지만 이미 예견되었던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곳이 바로 다름아닌 ‘코닥’이다. 그것도 무려 1975년이라는 시대를 한 참 앞서간 시점에서, 스티브 사손 Steve Sasson이라는 연구원이 필름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코닥 경영진의 반응은 한없이 차가웠고, 새로운 발명품 앞에서 오히려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들의 주력 상품인 필름 제품의 판매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더 이상 디지털 카메라의 기술 개발은 하지 않기로 하고, 그냥 깊숙이 묻어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1981년에 일본의 소니가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하고, 연이어 후발 업체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내 놓고,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코닥은 1994년에 마지못해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소니, 니콘, 캐논 등의 디지털 카메라 제품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신들의 주력 상품의 매출하락을 우려하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신기술에 대한 흐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통합 브랜드로 세계 5위 브랜드였던 코닥은 2012년 파산을 하고 만다. 자신들이 먼저 개발한 기술을 두고도 기존의 잘 팔리는 제품만을 고수하고 기존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만을 고집한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비슷한 사례로 핀란드의 노키아를 들 수 있다. 노키아는 1990년대 초반부터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1998년에는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6년에 최초의 스마트폰을 내 놓으며, 일반 폰에 집중했던 경쟁사를 한 참 앞선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6년에 스마트폰을 피처폰 사업부와 통합하며, 삼성과 애플에 시장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14년간 휴대폰 세계 1위를 지켜오던 노키아는 한 때 시가 총액 3,030억 달러를 자랑하던 회사를 마이크로 소프트에 72억 달러에 매각하고 말았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소비자들의 편리와 니즈를 애써 무시했던 코닥과 노키아의 몰락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업, 창업, 창직을 하든 어떤 분야에 있든 변화를 두려워하고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지 않으면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언제나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나에게 지불하는 소비자들이 옳은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 노력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이들에게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