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잘 Feb 16. 2024

31. 관여와 참견

니 똥이잖아요

집앞 숙지산을 주 3회 정도 걷는다. 힘들게 매트필라테스를 마치고 걸을 땐 펌핑된 근육이 릴랙스된다. 오늘은 포근한 날씨에 봄향기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벙거지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땅에 코를 박았다. 나무와 흙냄새가 구수롭다. 콧구멍으로 흙이 들어올까봐 깊게 숨을 들이마시지는 않았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맨발걷기를 했다. 봄날 같은 겨울날에 두 세번 맨발걷기를 했다. 무심한듯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0.5× 에 놓고 찍으면 먼 거리까지 한 화면에 담긴다. 넓고 근사해보인다.


나의 포토 프레임이 정감있어서 좋다는 후배가 숙지산을 걷고싶다고 한다. 오십 번쯤 다닌 그 길을 천천히 답사하듯 걸었다. 내일 오전 오산에서 그녀가 온다.


지난 수요일에 숙지산에서 내려오는 계단 옆에 심은 어린 측백나무가 와르르 꺾여있다. 샨에 올라오는 민하언니랑 딱 마주쳤다.



"언니 이것좀 봐"

"미친거아냐?"


왜 나무를 꺾었을까. 발로 걷어찼냐는 나의 말에 언니는 손으로 잡아 꺾은거 같다고 했다. 하긴 살아있는 생나무를 발로 찬다고 꺾일거 같지는 않았다. 언니는 산에 이상한 사람이 오는거냐고 하면서 무섭다고 했다. 언니는 산으로 올라가고 나는 집에 왔다.


수,금은 매트필라테스를 하는 날이다. 오늘은 허벅지에 밴드를 묶고 허벅지가 터지거나 밴드가 끊어질 때까지 버티라고 까랑까랑한 우리 선아샘이 부드럽게 말했다. 입술이 하얗게 불태웠다.


그리고 한번 더 답사할 겸 숙지산을 걸었다. 모자를 벗고 절하듯 땅바닥에 엎드려 숲냄새도 맡았다. 나는 왜 벙거지모자를 쓰면 거지같을까.


산을 걷고 햇살언덕에서 빙그르르 햇살 맛사지를 하고 계단쪽으로 내려왔다. 앗! 누군가 꺾여진 측백나무 가지를 정돈했다. 나무 두 덩이는 수요일 그대로 쓰러져있다. 조심해서 나무를 세웠다. 주위의 흙을 맨손으로 집어서 살살 덮었다. 흐뭇하고 뿌듯하다. 나무를 심은 기분이다.


계단 아래서 강아지가 똥을 싼다. 똥쌀 때 지나가면 긴장할까봐 계단 위에서 기다렸다. 강아지가 두 발로 흙을 할퀸다. 주인이 '왜 안가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주인이 산책로 가운데 똥을 그대로 두고 계단을 올라간다.


'말할까말까'


짧은 순간 다섯 번은 망설이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견주니임~~"


"예?"


"똥은 치우고 가셔야죠. 저는 개 똥 싸는데 스트레스 받을까봐 멀찌기 서 있었는데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네 이따 내려갈 때 치울께요"


"그건 아니죠. 올라가다가 똥 밟으면 어떻게해요?"


"예 지금 내려가서 치울께요."


자기 새끼 똥도 못찾고 내게로 온다.


"저기에요 저기. 입장 바꿔서 견주님이 똥 밟으면 기분좋겠어요? 이건 좀 아닌거 같아요."


"네 저 봉투 가져왔거든요"


부시럭 거리면서 똥봉투를 꺼낸다. 뭥미?


견주님~젭알~~~


오늘은 내 나름의 기준을 넘어 세상에 관여했다.


관여: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함.

참견: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관심은 많이 갖지만 참견은 적게하고 관여는 적게하려고 평소에 노력한다. 내일이든 자식일이든 세상일이든.


하지만, '아니다' 싶을 땐 관여를 해야겠다. 아니면, 거리두기를 하든지. 속으로 끙끙거리다 나못나 지겠다.


벙거지 모자 예쁘게 쓰는 법 유튜브 검색이라도 해봐야겠다. 앗! '버킷햇' 이란다. 세수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이마를 내놓고 써봐야겠다. 그리고 당당하게 귀여운 미소를 장착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30. 울적 주의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