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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Mar 05. 2024

39. 묘비명

사는 동안

가끔 묘비명이 생각난다. 


가끔 묘비명을 생각한다. 


강사로 일을 할 때 비전설정에 대한 강의를 하면 조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소개하곤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안산 김홍도미술관 대표 김미화님의 묘비명을 듣고는 웃었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2019년 10월 용인 카페 호미에서 '사는 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 김미화' 님을 만났을 때 유쾌하고 졍겨운 모습에 참 좋았다. 피자도 쫄깃하고 맛있었다. 고맙고 좋은 사람을 호미에서 만났었다. 네 번째 방문은 누구랑 할까. 


'혼자만 잘살믄 무슨재민겨' 전우익님의 책을 읽고 산다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다. 

신경림 시인이 "선생님하고 있으면 참 편해요" 라고하니 전우익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원래 못난 사람의 미덕이 남 편하게 해주는 거 아니니꺼."


나도 이 비슷한 말을 하곤했다. 


"나는 여자강사들이 좋아해. 미모 경쟁할 필요가 없는거지." 사실은 다른 가치로운 행복을 꿈꾸니더. 


오래토록 가슴에 남는 묘비명은 가까웠던 지인이다. 이이는 괴짜스러운 면에서 어린왕자같았다. 그 자신도 자신을 괘변론자라 말하기도 했다. 불혹의 그가 갑자기 떠나고 나는 꽤 오래 황망했다. 


'죽은 자의 명언으로 오늘을 위안하며 살아갈 것인가? 나의 이야기로 오늘의 명언을 만들 것인가?'




나는 산수유 꽃이 피는 4월에 결혼했다. 


1993년 4월 11일

수원 화성 장안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다.


그땐 결혼식 당일에 야외촬영과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한꺼번에 했다. 새벽부터 시작해서 늦은 밤 제주도에 도착했다. 남편이 비행기 멀미를 해서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배 고픈 걸 싫어한다. 잘 못참는다. 나는 내 밥을 다 먹었다. 혼자서 밥만 잘 먹었다고 몇 해 동안 원망을 들었다. 결혼식날 신부는 하루종일 쫄쫄 굶는다. 나는 폐백 할 때 둘이 먹던 대추 한알을 우물거리며 먹었다. 배는 부르지않았다.


산수유꽃이랑 생강꽃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나무 줄기랑 잎을 봐도 헷갈린다. 몇 해 전 광교산에서 어느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멈추어서서 티격태격 하더니 '생강나무냐 산수유냐' 내기를 했다. 나도 정확히 몰라서 끼어들진 않았다.


남들은 동의하지않지만 나는 어린왕자 같다고 생각하는 대학원 후배 풀낭님이 한택식물원에서 일할 때 친구랑 놀러 간 적 있다. 그이가 숲 속에서 걸어오는데 친구가 말했다. "남자였어?" 


산수유꽃이랑 생강나무꽃이 헷갈린다고 하자 사무실로 뛰어가서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왔다. 생강꽃을 따서 두세 송이 종이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줬다. 노르스름하게 아기 오줌색깔로 변했다. 새순의 비릿한 향과 맛은 별로였지만 그 추억은 달콤하다.  


 '사실 별 맛 몰랐다'


어쩌면 산다는 건 그런건지 모른다. 

별맛 없지만 얽히고 설켜 눈물맛이 나기도 하지. 

2021. 3. 29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전우익(2002년 10월)



'나의 묘비명을 무엇으로 할까' 


가끔, 생각하면서 하루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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