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먼지와 호떡의 공통점

힘이 들 땐 잠깐 기다려, 가끔 오래 걸리기도 하지

by 오잘줌마

빨래 건조기 먼지 망은 한 김 식은 후에 처리하면 수월하다. 빨래가 건조되자마자 먼지를 치우려고 하면 정전기에 먼지가 날린다. 빨래가 완료되면 먼지 필터를 꺼내 휴지통 뚜껑 위에 두었다가 다음 번 빨래할 때 세탁을 누르고 나서 휴지 한 장으로 살살 훔치면 먼지가 날리지 않으면서 지들끼리 잘 뭉친다. 눈덩이 굴리듯이 먼지 덩이로 남은 먼지를 살살 뭉쳐서 버리면 된다. 물세탁은 아주 가끔 하면 된다. 맨 처음 건조기를 샀을 때는 먼지를 대충 치우고 솔로 솔솔 비비면서 헹구었다. 어느 날 AS 서비스 하러 온 기사가 매번 물로 닦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아들이 전해줬다. 먼지 필터는 소모품이니 너무 자주 솔로 문지르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겨울철 길거리 간식 중에 붕어빵이 좋다. 호떡은 너무 뜨겁다. 남편은 갓 구워진 호떡을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음식 먹는 거 싫다면서 호떡 가게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호떡을 먹으면 아랫입술을 잘 덴다. 아랫입술이 두꺼워서 그런가 싶다. 가끔은 점퍼 앞에 설탕물을 흘린다. 그래서 나는 호떡보다 붕어빵을 선호한다. 딸아이는 팥 붕어빵만 먹는다. 슈크림 붕어빵은 남편과 아들이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붕어빵은 정자시장 반찬천국 옆 무뚝뚝한 아저씨가 굽는 붕어빵이다. 우체국 옆 붕어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줄이 길다. 어느 날 남편이 우체국 옆 붕어빵을 줄 서서 사왔다. 우리는 맛이 별로라는 듯 한입 먹자마자 동시에 눈이 마주 쳤다. 무뚝뚝한 아저씨네서 붕어빵을 살 때마다 딸아이랑 나는 웃는다. ‘아저씨네 붕어빵이 제일 맛있어’ 말 안 해도 통한다. 진짜로 아저씨네 붕어빵은 식어도 맛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붕어빵 맛집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시장 골목에만 붕어빵 가게가 네다섯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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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시장 골목 끝나는 아파트 앞에서 호떡 파는 아줌마가 호떡은 구운 후 한 김 나가면 제일 맛있다고 알려주셨다. 호떡은 한 김 빠져야 발효 이스트 향도 나지 않고 쫀득하고 맛있는데 사람들은 갓 구운 호떡을 찾는다고 한다. 빨래 건조기 먼지는 한 시간쯤 지나면 청소하기 쉽고 호떡은 십 분쯤 지나면 입술도 안 데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잠깐 기다림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어퍼컷을 우다다다다 맞았다.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힘들었다. 아니 일 년 넘게 마음의 찌꺼기가 가시지 않아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두려웠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인 기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엔 하나님께 달려가서 일러바쳤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기록할 수 없어서 세줄 일기 앱에 간략하게 기록했다. 가끔씩 꺼내 봤다. 차츰 마음이 괜찮아졌다. 믿을만한 두 명에게 말했다. 한 명은 격렬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고 다른 한 명은 조용히 들어주었다. 심리상담을 하는 동생에게 조언을 구했다. 낯선 에너지를 갑자기 맞아서 그렇다며 빼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금씩 괜찮아지다 나아졌다.


‘이 우울감은 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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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녀들이 전화로 고민을 말하거나 찾아왔다. 때론 내 시간을 조절해가면서 밥을 사고 커피를 사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의 속마음을 마음껏 꺼낼 사람이 없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말랐다. 울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울면 내 남편이 며칠을 걱정한다. 신혼 때는 한번만 더 울면 쫒아낸다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울적하다고만 해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남편에게는 고민을 말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영언니랑 지니가 있어 다행이다. 위로 열살 쯤 아래로 열 살 아래인 두 여자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준다. 열 살 아래 지니는 적정선의 피드백도 해준다. 신뢰가 있으니 피드백을 고맙게 받는다.


감정관리하는 방법 중에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가지라고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반응하게 되면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잠시 시간을 갖는 게 도움이 된다. 오래전 드라마를 보면 부부 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빡빡 피우면서 화를 삭힌다. 강한 충돌을 피한다. 남편이 주먹을 쥐고 내리치는 모습만 봐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지금이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잠깐!’ ‘Stop!’ 을 외치고 밖으로 나갔다 오면 도움이 된다. 그것조차도 어려우면 나는 눈을 감으라고 한다. 시각과 청각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 장점이면서 가장 문제가 많이 생긴다.


나는 오래전부터 결심한 게 있었다. 힘들 때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특히 인간관계로 힘들 때 누군가를 만나면 부정적이고 불평을 말하게 된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찝찝하고 씁쓸한 지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 기분이 싫어서 혼자 삭힌다. 달려도 보고 뛰어도 보고 맨발로 걸어도 보고 글을 써보지만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으로 수백 번 기도해도 어쩔 수 없을 때, 나의 인간관계 문제와 거리가 먼 두 여자를 만나서 하소연을 한다. 다른 사람 고민은 들어주면서 나의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 아닌가. 코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이제 나는 나의 약함과 못남을 무능으로 생각하기 않고 자연스러운 나이듦으로 받아드리려고 애쓰고 있다.


새해가 오고 한참 동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밤잠을 설치기도 새벽잠에 깨기도 했다. 내 앞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는 건 오히려 쉬웠는데, 여유를 즐기고 여가를 누리는 건 불편했다.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이제 조금 나아졌다. 다행이다. 다음 주에는 개강 준비를 해야 하니 때가 딱 좋다. 기분은 온라인을 통해서도 전해지니까.


먼지도 호떡도 내 기분도 잠깐 쉼을 두면 알맞게 즐길 수 있다. 세탁군에게 빨래를 부탁해야지. 미리 땡큐, 세탁군 건조씨. 둘 덕분에 나의 노동해방이 이루어진다. 그 짬을 이용해 나는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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