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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Nov 08. 2019

당신의 멋짐을 알기엔 너무나 뒤처진 세상

나는 강해지고 싶다. 내 외면이 내 내면의 강함과 일치하기를 소망한다. 기립근이 탄탄하게 잡아주어 서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위풍당당한 자세와, 인생의 어떤 흔들림에도 미동 없이 지면에 단단히 뿌리내릴 두꺼운 허벅지와 근육질의 팔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40킬로 중반의 저체중인 여자고, 어쩐지 내가 헬스장에 주 5일씩 출근도장을 찍는다고 말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살 안 찐다고 자랑하는 건가요?

참 이상하게도 비만인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례이지만, 저체중인 사람에게 왜 이렇게 말랐느냐라는 말을 하는 것은 괜찮다. 그리고 내가 근육을 찌우기 위해 내 타고난 시스템을 거스르며 억지로 음식을 입 안으로 집어넣어가며 운동을 하는 것은 왠지 재수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너 지금, 먹어도 살 안 찐다 이거지?



억울하다. 내가 고작 한 줌의 근육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정상체중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떡을 하루에 한 팩씩 먹는지에 대해 나는 이야기할 수 없다. 마름이 최고의 가치이고, 날씬한 여자 연예인의 몸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저체중은 의학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 상태를 노력 없이, 타고나게 갖게 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고, 체력이 약해서 조금만 무리하면 쉽게 방전이 되는 타입이다. 소화 시스템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부분의 경우 먹자마자 화장실을 가고 세 시간 후면 배에서 천둥소리가 난다. 그래서 예전부터 체력의 중요성을 뼈저리 느꼈다.



왜 드라마 미생에서도 이런 대사가 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데미지를 입고 회복이 더딘 이유는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


이렇듯 체력이 낮으면 필연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문지방이 낮아지고, 피곤해진 몸은 태도와도 직결된다.




나는 Annie Thorisdottir의 우람한 팔뚝과, Katrin Davidsdottir의 식스팩과 Tia-Clair Toomey의 강인함을 소망한다.

나는 넷플릭스에 있는 크로스핏 경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신세계를 접했다. 소위 우리나라에서는 징그럽다고 여겨질 엄청난 근육질의 선수들이 진흙탕을 구르고, 로프를 타고 올라가고, 수백 킬로의 바벨을 드는 모습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원하는 게 있다면 돌진해서 무엇이든 이루어 내고 말 것 같은 그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강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때부터 나의 롤모델은 강한 그녀들이 되었다. 물론 내가 프로틴 파우더를 챙겨 먹고 내 몸무게만 한 무게로 스쾃와 데드리프트 주 5일씩 해야 겨우 근육이 보이는 정도지만 말이다.



나에게 체력이라는 게 생겼다. 아직 밴드의 도움을 이용해야 하지만 턱걸이 3개를 할 수 있게 됐다. 마음의 여유도 늘었다. 야근을 하고도 이렇게 집에 와 브런치에 글도 쓴다. 몇 남사친들은 불뚝 튀어나온 내 어깨 근육을 보고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상관없다. 모든 여자가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님들은 어차피 말해줘도 이해 못하겠지만 너네들한테 예뻐 보이고 싶은 게 아니거든. 덤벨 컬 할 때 비명을 지르는 내 이두와 실패하기 직전의 마지막 스쿼트를 해내는 나 스스로의 모습이 보고 싶은 것뿐.





우리에겐 더 다양한 미적 기준이 필요하며, 강함과 튼튼함도 반드시 그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한다.

왜 학창 시절에 꼭 짓궂은 남자애들이 덩치가 큰 소녀들을 장미란 선수라고 불리며 놀리곤 했다. 아마 3대 운동을 한 번도 안 해 본 애들 일 것이다. 운동을 제대로 해본 사람은 알게 된다. 장미란 선수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신' 인지. 누군가는 내 저체중의 몸을 부러워 하지만 나는 그들의 살집 있는 몸을 보며 저 사람은 파워리프팅을 얼마나 잘 해낼 포텐셜이 있을까 부러워한다. 아는 키 큰 언니는 내가 누구의 품에나 쏙 들어갈 것 같아 부럽다 했지만, 나는 그녀의 골격이라면 근육을 조금만 붙여도 멋짐이라는 게 폭발하겠구나 하고 내심 부러워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 멋진 구석이 있고,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미적 기준이 필요하다. 다 똑같은 XS 사이즈의 표본만 촤르르 늘어놓는 건 너무 진부하고 식상하지 않나?



내가 대학생 새내기이던 2011년에는 앵두같이 작은 입술이 유행이었다. 타고나게 입술이 두툼한 나는 이를 작아 보이게 하겠다고 틴트를 입술 중앙에만 바르는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두꺼운 입술과 입술 필러가 트렌드다. 슈가의 아유미가 '엉덩이가 작고 예쁜 나 같은 여자'라는 노래를 부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킴 카다시안의 큰 엉덩이가 핫하다. 이처럼 미적 기준은 끊임없이 변할 뿐이며 그 기준에 맞춰 타고난 당신의 멋짐을 구겨 넣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 그저 이 세상이 당신의 멋짐을 알기에 너무나 트렌드에 뒤쳐져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당신의 멋짐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 멋진 본인의 모습을 잘 알아주고 즐기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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