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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May 03. 2021

우리 곁의, 내 안의, 세상 속의 어린이

[책 리뷰]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벌써 16년이나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내가 참 좋아하고 따랐던 담임 선생님의 온화한 얼굴. 그때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달리 겁도 많고 소심했던 나를, 따뜻한 미소로 안심시키던 선생님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린 나의 엉뚱하고 쓸데없는 질문에 귀찮아하실 법도 한데, 선생님은 언제나 정성껏 답 해주셨다. 고개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춰주던 선생님 특유의 포근함이 좋아, 아직까지 나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과거 선생님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존중으로 어린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겠지.


<독서교실>을 운영 중인 김소영 저자는 어린이들과 책을 읽는 독서 선생님이다. 책은 저자의 아이들과 함께 보낸 소중한 일상에, 그녀만의 섬세하고 단단한 시선을 담아냈다. 그녀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나에게까지 와 닿아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얼굴에도 다양한 감정이 스민다. 책 속 아이들의 순수함이 사랑스러워 웃음 짓고,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 과거를 회상한다. <독서교실>을 다니는 아이들과 저자 사이에 공유된 추억이 부러웠고, 아이들을 한 명의 인격으로서 존중하는 저자의 따뜻하지만 단단한 모습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폭력과 혐오로 가득 찬 사회를 살아가는 어린이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고 자기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노는 그 순간이 어린이의 현재를 빛나게 한다.





어린이의 빛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분명 어두운 그늘도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참 싱그럽고 빛나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그 찬란한 빛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자라며 가슴속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 내 안에서 영원히 빛을 발산한다. 사랑으로 나의 빛을 지켜준 부모님과 선생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나는 어린 시절의 반짝임을 기억하며, 그 빛이 내뿜는 길을 따라 더 넓은 세상으로 걸어간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는, 어두운 그늘과 찬란한 빛을 동시에 뿜어내는 어린이가 단단히 버티고 서있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찬란한 빛을 지켜줄 차례가 왔다.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 P53








어른의 역할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가슴 미어지는 사건들에 뉴스를 들어가기 겁이 난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끔찍한 범죄 수법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나의 정신마저 무뎌지고 피폐해진다. 성범죄, 스토킹, 아동학대, 묻지 마 폭행, 혐오범죄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에도, 어느새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초연히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에, 심각성을 느끼며 가슴이 답답하게 죄여 온다. 그 수많은 범죄 사이에서도, 유독 성과, 아이에 관한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 일까?


온갖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도, 특히 아이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면 심장이 덜컥한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해맑게 뛰어놀며, 세상의 모든 사랑을 받으며 해바라기처럼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어둠과 폭력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해 눈물이 난다. 도대체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어리석은 어른들은 끔찍한 악몽만을 선사하는 것일까. 범죄의 대상에 아이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까지 '어린이'와 관련된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회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저자는 말한다. "어린이 문제는 한 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세상에 안전하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지, 건강한 사회를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와는 상관없다며, 단순히 회피할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고 익숙해지지 않게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빛나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사랑과 행복만을 가슴속에 품은 채, 홀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말이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P219


어린이에게 할 말을 고르고, 그 말에 나를 비추어 보면서 '길잡이'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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