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들여온 감기는 나를 시작으로 남편에게 그리고 둘째에게까지 옮겨갔다. 코가 막혀 입으로 힘들게 숨을 쉬는 둘째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갔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그날의 증상 말고도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신다. 이제 막 사 개월이 지난 둘째의 머리통을 동그랗게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시더니 좌우가 좀 다르다고, 이건 한쪽으로만 많이 누워있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을 좀 써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두상에 별 신경 쓰지 않고 막 키운 것 치고 첫째의 머리는 깎은 밤처럼 동그랗게 야무지다. 나는 원래 외모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인 데다 첫째가 운이 좋게 괜찮게 두상 모양이 잡혔고 게다가 둘째는 무엇이든 첫째보다 덜 신경 쓰게 되는 이 모든 상황이 합쳐져서 양쪽이 삐뚤삐뚤한 둘째의 두상이 완성된 것이다. 둔한 내 눈으로 봐도 왼쪽이 더 동글하고 오른쪽이 납작했다. 이제는 신경 써서 왼쪽으로 더 많이 눕혀 이 비대칭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아, 데칼코마니에 실패한 둘째의 두상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긴장과 설렘 속에서 매 시간 살았던 첫째의 육아시절과 달리 지금은 설렁설렁 대충 그 자체, 그래서 둘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낸다. 그러니 충분히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죄책감이 든다. 첫째의 이쁜 두상을 보고 관리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두상이 뭐 중요하냐며 난 그런 거 잘 모른다고 대답했던, 나의 쿨한 모습은 사실 관리하지 않아도 이쁜 두상을 타고난 아이의 엄마라는 우월감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두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이 일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흔들릴 리가 없지 않은가.
열심히 요리조리 눕히는 방향과 시간을 신경 쓰고 있다. 아직 몰랑몰랑한 머리라 바뀔 가능성이 있다니까. 문득 양손을 쫙 펴서 내 두상을 만져봤다. 생전에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나의 그것. 나는 내 머리통을 위에서 옆에서 뒤에서 볼 수 없으니까 만져본다. 단단하고 딱딱하다. 이미 다 굳은 쪼그라들 일만 남은 어른의 두상. 그러다 보면 또 몰랑몰랑하고 보드라운 아이들의 머리를 자꾸 만지게 된다. 아직 닫히지 않은 숨구멍은 미지근한 촛농 같다.
별걸 다 신경 써본다. 니 덕분에 둘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