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깜빡하고 어제 일도 희미한 내 옆에 그야말로 스펀지가 있다. 붙잡아놓고 가르치지 않아도 대체 어디서 들었나 싶은 단어를 툭툭 내뱉는 첫째. 지난한 인풋의 시간이 있어야 아웃풋이 넘친다는 이론적 이야기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의식적으로 아이 앞에서 천천히 그리고 많이 이야기했다.(이야기 상대가 없기도 했고. 흑) 신체적 발달이 또래보다 빨라서 말도 좀 빠르게 하려나 기대했는데 별 말이 없는 아이 앞에서 솔직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조잘조잘거리는 게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조급해지려는 시기쯤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말 수가 많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그리고 날이 갈수록 말의 양이나 질의 상승곡선이 엄청나다.
살면서 듣고 말하는 게 너무 평범해서 아무렇지 않은 단어들도 어린 스펀지가 뱉으면 다르다. 아이 입에서 나오는 설명서, 일일분, 분해 같은 단어는 너무 웃기고 감동적이고 뭉클한 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는 주방 소형 가전, 특히 전기밥솥을 엄청 좋아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을 밥솥을 갖고 논다. 아침과 저녁, 세수한 뒤 로션을 바르면서 보는 영상 거의 모두 밥솥을 분해하거나 리뷰하는 영상이다. 자주 말하는 단어 모두 밥솥과 붙어있는 것이다.
무심코 어른들이 흘린 말, 차에서 들은 라디오, 엄마아빠의 전화통화에서 들은 말, 너무 사소해서 어른들은 아무 의미 두지 않는 일 모두 주워 담아 차곡차곡 담는다. 오늘 아침 일도 저녁이 되면 까먹는, 나이 든 뇌와 많이 닳아버린 정신을 갖고 사는 기분이 드는 내 앞에서 어린 생기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뭐든 좋은 건 다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너무 나태하다. 대충 뭐 이런 생각들. 자꾸 내 마음이 부정적이고 슬픈 무드로 기우는 건 아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가 아닐까 싶다. 자꾸 이 시간을 지나는 게 아쉽고 조급해서.
어제는 자기 전 좋아하는 동요를 들으며 함께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신생아 시절에 이런 장면을 꿈꾸며 옹알이도 못하는 아이 귀에 대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는데, 세상에 내가 물으면 얼추 그럴듯한 대답을 하는, 대화가 되는 시간이라니. 정말 꿈만 같았다. 대화 중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아이는 문득 허공에 시선을 맞추고 슬며시 웃으며 이 노래 좋아. 엄마 좋아. 해줬다. 어떤 행복에 이 순간을 갖다 댈 수 있을까. 어여쁜 나의 새. 작은 몸을 꽉 안았다. 간지럽다고 놓아달라고 바둥거리는 아이의 몸을 조금 더 꽉 안았다.
그렇게 우리 집 두 살은 하루종일 재잘거린다. 대화 상대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야말로 자기의 세계관이 가장 강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모두가 이야기고 걸을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