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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Jul 13. 2019

내 이름은 수지

사는 이야기

 주위에 보면 세대별로 유행하는 이름이 있다. 엄마 세대인 40년대에는 엄마 이름인 '옥자'를 포함한 '자'자 돌림이, 내가 태어난 60년대에는 '그까짓 계집애'란 평가 속에 아무런 고민 없이 막 지었을 '명숙이, 은숙이, 경숙이, 미숙이, 영숙이 등 ' 숙'자 돌림이 많았다.

둘째가 태어난 90년대에는 여성스러운 '수진'이라는 이름이, 막둥이가 태어난 2000년도에는 남녀 구분이 안 되는 중성적인 이름이 유행이라 '지민'이라는 이름이 흔한 시대가 되었다.


촌스럽고 흔한 내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 이름만큼은 개성 있고 예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물씬 나는 귀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들여 지은 첫째와 달리 남편이랑 함께 며칠간 심사숙고해서 옥편을 찾아가며 지은 둘째, 셋째가 모두 흔한 이름이 되었다. 놀이터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면 여럿이 쳐다보기도 하고, 학교에 가면 한 반에 같은 이름이 한두 명씩은 있어 아이에게 이름 콤플렉스를 안겨주고 만 것이다.    

  

얼마 전 권혁웅 시인의 <마징가 계보학>에 있는 이름에 관한 시 '쑥대머리'를 읽고 잠시 개명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글자를 조합해서 이 이름, 저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세 아이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서 붙인 '민수지'란 이름에 꽂혔다. 배수지, 신수지, 최수지처럼 이 세상 '수지'는 다 예쁘니까. 며칠 뒤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신규 등록한 문화센터 영어반에서 영어 이름을 말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로즈, 스텔라, 미쉘, 보나, 벨라, 프리지아...'

선생님은 계속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무엇으로 정할지 재촉하셨고 나는 들릴락 말락 조그맣게 ‘수지요….’하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영어 이름이 수지(SUSIE)로 정해진 것이다. 처음 선생님이 "수지님~" 하면 동료들은 "누구야 누구?" 하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옆에 앉은 수지를 못 알아봤고 50대인 촌스러운 여자를 수지로 인식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멀리서 언니들이 큰 소리로 부른다.

 "수지야~"

좀 민망스럽긴 하다. 양심적으로 말하면 개그우먼 이영자의 본명이 이유미인 것처럼 이 얼굴엔 민수지보다 조영숙이 딱 맞는데 말이다.

<2019 MBC 여성시대 방송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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