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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한 Jul 13. 2023

무한반복재생

인생의 묘미

자주 듣던 노래의 가사가 갑자기 귀에 꽂히면서 그 노래가 나를 완전히 대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 노래를 길면 한 달씩도 매일 무한반복하며 듣는다. 가끔씩 이런 노래들이 생길 때면, 일상 속에서 큰 선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너무. 행복한. 경험이다.


그 노래에 꽂히는 것은 정말 찰나의 '한' 순간인데, 나는 그 순간을 유지하고 싶어 한 달이고, 매일매일, 무한반복으로 그 노래를 재생한다.


나에게는 시절마다 그 시절의 히트송과는 다른 나만의 히트송들이 있다. (물론 일치할 때도 많긴 하다.) 무한반복재생하도록 하는 그 노래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노래가 있고, 그 노래가 재생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 시절이 있다. 7살, 친구들은 모두 에버랜드로 떠날 때, 나는 막냇동생이 태어나서 산후조리원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때 아빠차에서 무한반복으로 듣던, 씁쓸하지만 아련한 감상에 젖게하는 그 동요(무려 7살에게도). 17살, 첫사랑과 헤어지고 아직 함께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가사에 절절대는 마음으로 무한반복해서 듣던 그 노래. 27살, 대학원 생활에 힘겨워하고 있는 나를 위로해 준, 매일 습관적으로 무한반복재생하던 그 팝송. 모두 기억할 수도, 헤아려볼 수도 없는 수많은 노래들이 나의 시절들을 함께 해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나 아련하고, 절절하고, 습관이었던 노래들도 어느 순간 뚝.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어? 어디 갔지?'라고 찾은 기억도 없이 말이다. 혹은 '오늘도 늘 듣던 그 노래로요.'라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재생했는데.. '이상하다. 평소랑 다른데요? 늘 듣던 그 노래 맞아요?'라는 반응이 나와버린다. 전주가 흘러나올 때부터 설레고 들떠서 첫 소절부터 마지막 소절까지 가사, 멜로디, 리듬을 온전히 집중하여 음미했던 노래였는데.. 자꾸 중간중간 딴생각의 길에 빠져 있는 내가 발견된다. 그럴 때면 나는 몇 번이고 '이전곡 재생' 버튼을 눌러 '이번에는 진짜 집중해서 평소처럼 끝까지 즐겨보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시 노래를 듣곤 하는데, 몇 번이고 딴생각의 길에서 나를 다시 데려올 뿐이다. 결국 그 노래는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대게 이런 노래들은 나에게 격렬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보단 뭉근하게 존재하며 공감과 위로를 해주고 스윽 떠나버린다. 한 노래가 떠난 후에는 나도 더 이상 찾지 않으며 잊고 살면서 또 다른 무한반복재생용 노래를 찾기 위해 이 노래, 저 노래를 듣는다. 대게 이런 노래들은 찾기 위해 노력할 때보다는 우연히 한 순간에 찾아오지만.


그러다 뜬금없이 예전 '그 노래'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옛날 플레이리스트에서, 남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새로운 술집에서, 오래된 LP바에서. 그때의 나는 새롭게 꽂힌 노래를 무한반복하며 또 어떤 노래에 한껏 빠져있거나, 그런 노래 없이 별일 없는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는 '그 노래'는 나를 순식간에 그 시절로 데려가고, 그 시절과 다른 '나'지만 여전히 '나'인 '나'는 한동안 또 '그 노래'를 반복재생 해보게 된다. 그 마음을 그리워하며 며칠 동안 듣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관두기도 하고, 그 시절 나의 마음으로 돌아가 또 무한반복재생 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지금의 내가 그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그 노래에 꽂히기도 한다.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들은 시간을 돌려 그 시절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을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노래'와 함께 나의 곁에 뭉근하게 존재하며, 공감과 위로를 해준 그 사람들. 여전히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그 노래'들이 있듯이, 여전히 내 옆에 있는 그 시절의 사람들도 있지만, '어? 어디 갔지?'라고 찾은 기억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도 내가 옛날에 살던 고향에서든, 지금 살고 있는 타지에서든, 새로운 술집에서든, 오래된 LP바에서든 뜬금없이 나타나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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