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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Mar 31. 2019

Kursk

러시아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


IMDb: 6.5/10
Rotten Tomatoes: 71%
Metacritic: 53%
Director: Thomas Vinterberg
Budget: 40 million USD
Music composed by: Alexandre Desplat
Cast: Matthias Schoenaerts, Léa Seydoux, Colin Firth


     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 해 심해 160m 지점, 훈련 중이던 러시아 해군 소속 핵 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 승무원 118명 전원 사망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소련군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창설하였고, 그 규모는 구소련의 절반 이하의 수준이었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체결한 2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에 의해 2000년까지 당시 보유한 약 250척의 잠수함 중 100척 이상을 해체하기로 결정, 2000년도 당시 잠수함은 50척에 불과했다. 그로 인해 러시아 해군력은 구소련의 3분의 1로 감소하였으나 북해함대는 전략적 중요성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그 기항인 세베로모르스크가 위치한 바렌츠 해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냉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해군 병력 감축이 진행 중이던 1994년 건조된 쿠르스크 호는 잠수시 배수량 18,000톤급의 오스카 2급 전략핵추진 잠수함으로, 2기의 원자로가 있으며, 24기의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다. 쿠르스크호는 가라앉지 않는 배로 평판이 나있었고, 직격의 어뢰를 맞고도 버틸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사고 당일 아침, 수십 년 만의 최대 규모, 그리고 구소련 붕괴 이후 첫 훈련인 '여름-X'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에는 30척의 배와 3척의 잠수함이 참가하고 있었다. 쿠르스크 호는 당시 탁월한 성과로 표창을 받았고, 선원들은 북해 함대 내의 최우수 잠수함 선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훈련 중이었지만 쿠르스크는 전투용 무기를 가득 싣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대함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지 시각으로 11시 29분 34초, 노르웨이 지진파 탐지 연구소와 세계의 다른 곳에 위치한 지진파 감지기에서 리히터 규모 1.5의 폭발이 감지되었다.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온도는 2700도에 이르렀음이 후에 밝혀졌다.


     첫 번째 폭발이 있은지 2분 14초 후인 11시 31분 48초에 잠수함 안에서 그보다 훨씬 큰 폭발이 일어났다. 북유럽을 가로지르는 지진 관측소의 자료에서 해당 폭발은 바다 밑바닥의 깊이에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번째 폭발은 전투용 어뢰 5-7발가량의 탄두 폭발력에 해당된다. 한 발의 65형 어뢰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459kg의 탄두로 무장되어 있다. 후일 표르트 멜리 키 호의 음향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7발가량의 어뢰가 연속적으로 폭발하였음을 알려 주었다. 첫 번째 폭발보다 250배 컸던 두 번째 폭발은 유럽에서 리히터 규모 4.2의 크기로 측정되었고, 멀리 알래스카에까지 감지되었다.


     쿠르스크호의 인양은 노르웨이 잠수지원선과 영국 전문가의 참여로 2001년 7월 착수하여 10월에 마무리되었다. 인양된 선체 내부에서는 48구의 시신만이 수습되었고, 블랙박스도 회수되었다.


 

     영국과 노르웨이를 포함, 근접한 지역에서 원조를 제안했지만 생존자들보다 해군력과 국가 체면을 더 신경 썼던 러시아는 이미 망가진 잠수함임에도 그 제안을 거절했고, 생존자들의 가족들에게도 돌아가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힘으로 구조하고자 내려갔다가 이미 실패하고 돌아왔는데도 말이다.


     비극적인 실제 사건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간 감독은, 23명의 생존자들이 정시에 치는 생존 신고가 가장 기억에 남았고 그를 괴롭게 했다고 인터뷰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한정된 산소와 식량 그리고 저체온으로 괴로워하던 그들이 직면한 상황 속에서-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군으로서의 명예와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생존자들을 마지막까지 이끌었던 미하일의 첫째 아들은 마지막 엔딩에서 그의 아버지가 쓰던 해군 시계를 받으며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가능성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영화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https://youtu.be/6Q4fXD9y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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