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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Apr 27. 2021

헤어지는지도 모르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에게

열 번째 떠드는 글

Photo by Madeleine Kohler from Unsplash

'선량'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처럼 선량한, 보기 드물게 마음 착하고 대화를 나누면 항상 기분 좋아지는 친구였다. '예민'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이름처럼 예민할 것 같지만, 성이 '안' 씨라 전혀 안 예민하고, 마찬가지로 보기 드물게 마음 착한 친구였다.


선량이도 안 예민한 예민이도, 모두 20살 재수 시절 입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 시절 꽤 가깝게 어울려 지냈었는데, 입시를 마치고는 왜인지 인연이 이어지지 않아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실은 선량이와 예민이의 존재를 아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 마찬가지로 재수 시절 만나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또 다른 친구가 "꿈에 선량이가 나왔는데 너무 반가웠어"라고 말한 덕에 내 기억 속에도 선량이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고는 선량이처럼 착했던 예민이에 대한 기억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인스타그램에 페이스북에 트위터에 이리저리 검색해봤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선량이와 예민이의 소식을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 그러고 보니 선량이, 예민이와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나누고 헤어졌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아 덜컥 서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딱히 연락이 끊길 이유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인연이 이어지지 않은 건지……. 아마도 입시 마치고 각자 맞이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살아가기 바빠 그랬겠지. 그래도 좀 노력해서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유야무야 흩어져버린 인연이 아쉽게 느껴진다.


어디 선량이와 예민이뿐인가. 초등학교 때 영진이, 중학교 때 충효, 고등학교 때 건훈이, 군대 있을 시절 동한이 등등등. 모두 생각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추억이 있는 인연들인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모두와, 헤어지는지도 모르고 헤어져 버렸다.


이런 생각에 잠기니 또 과한 감정 발동돼 인생 덧없게 느껴지려고도 하는데,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면,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고,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소 지어지는 인연들이 나의 살아온 지점 지점들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게만 느껴졌었는데, 되돌려보니 좋은 인연들과 즐거웠던 기억도 많았구나 싶다.


당장은 나, 선량이, 선량이가 꿈에 나왔다고 말한 그 친구와 셋이 먹었던 저녁 한 끼가 특별히 즐거웠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중심지에서 입시를 준비하던 우리, 추석에 고향 내려가지도 못하고 학원에 틀어박혀 공부하다가, 늦은 밤 셋이서 삼겹살을 먹으러 갔던 추억. 고시원 들어가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겠다는 선량이를, 민족 대명절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뜯어말려, 맥주 대신 콜라 한 병 두고 야무지게 삼겹살을 먹으며 웃어댔던 시절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애쓰고 노력했다면 이런 추억이 있는 인연들을 놓치지 않고 지금껏 붙잡고 있었을까도 싶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어떤 인연들은 변하지 않고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되는 것 같다. 아득바득 붙잡아 두지 않아도, 계속해서 근황을 따라잡지 않아도, 이런 인연들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변하지 않는 따뜻함을 주는 것 같다.


안녕히, 모두.


살아오면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 그 시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선량이, 예민이, 영진이, 충효, 건훈이, 동한이 등등등. 헤어지는지도 모르고 헤어져 버렸지만, 덕지덕지한 미련보다는 좋은 추억들만 깔끔하게 기억해보려 한다. 그래도 여전히 안부는 궁금해 혼잣말로라도 묻고 싶은데, 다들 안녕한지? 살다 보니 많이 멀어지게 되었지만, 모두 살아가는 동안 넘치도록 안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 번씩 내 기억 속에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아. 그때 선량이, 예민이, 영진이, 충효, 건훈이, 동한이' 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또, 나도 한 번씩 그들의 삶에 그런 존재로 찾아가기를). 물론 그전에 인연이 다시 닿아 우연히 또 만나게 된다면 아주 반갑게 인사해야겠지만, 혹 다시 못 보게 된다 해도 안녕히,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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