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떠드는 글
회사라는 조직 사회에서 하나의 팀에 사원으로 소속돼 일하며, 인간적으로 마음이 이끌리는 팀장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직급의 차이, 세대의 차이가 크기도 하고,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묘한 거리감을 무시할 수 없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도 그런 것들과 아무 관계 없이 인간적으로 마음이 가는 좋은 팀장님을 두 번째 회사에서 만났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자 옮겨갈 직장을 찾던 나는 적절한 곳을 발견해 입사지원서를 접수했다. 얼마 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1차 면접을 보러 가 면접관으로 팀장님을 뵌 게 첫 만남이다. 인상도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내가 쓴 자기소개서를 밑줄까지 그어가며 꼼꼼하게 읽어오신 점과 사이사이 나에게 던질 질문들을 깨알같이 적어두신 점이 좋았다.
1시간 조금 넘게 면접을 보면서 앞에 앉은 이 사람이 나를 마냥 평가하려 드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지원한 직무에 맞는 사람인지 충실히 파악하려는 것이 느껴져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질문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러하니 나 또한 어떻게든 나를 어필하고자 과장하려 들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실하게 내놓은 답변 덕인지, 팀장님께서 잘 봐주신 덕인지 1차 면접을 통과하고, 어찌어찌 2차 임원 면접도 통과해,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하여 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됐다. 막상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면접 때 받은 느낌과는 또 다를 수 있는데, 그때 받은 좋은 느낌 그대로, 같이 일하는 동안 팀장님은 모시고 따라야 하는 어려운 상사라기보다는 나보다 이 일을 먼저, 더 많이 경험한 든든한 선배처럼 느껴졌다.
2018년 6월 입사해 그해 12월까지 짧은 6개월간이었지만, 얼마나 시간을 오래 보냈는지와 상관없이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많은 면에서 마음이 가고, 나도 모르게 의지하며 따르게 되는 분이었다. 이렇게 좋은 팀장님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6개월 남짓 짧게 일하게 된 이유는 팀장님께서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급히 관두게 되셨기 때문이다.
팀장님의 퇴사 날짜가 정해지고 얼마간 일을 마무리하시는 동안 틈틈이 응원의 말을 전하고, 회사를 그만두시는 날에도 잘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해드리고 했었는데, 너무나 아쉽고 슬프게도 팀장님은 퇴사 후 약 2년간 치료를 받으시다 최근 세상을 떠나셨다.
월요일 오전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팀장님의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비교적 최근까지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터라 그저 잘 이겨내고 계신 줄 알았는데, 이 무슨 갑작스러운 일인가 싶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직장인이 되고 어떤 이유로도 회사에서 울어본 적이 없는데, 어디 화장실로 달려갈 틈도 없이 뚝뚝 눈물이 흘러 책상 위에 웅크려 울었다.
그 와중에 내가 우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는 건 아무래도 싫어 울어도 집에 가서 울지 여기서는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그렇게 슬픈 감정을 틀어막아 하루를 겨우 보냈다. 다음날 동료들과 팀장님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울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하는 바보 같은 다짐만 했다.
울지 않겠다는 다짐이 지나쳤던 탓인지, 막상 장례식장에 도착해 팀장님의 영정 사진을 볼 때부터는 거의 무감정 상태가 되어 멀뚱멀뚱 눈만 껌벅거리다 돌아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것이 큰 후회로 남는다.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차라리 좀 울걸. 울지 않겠다는 생각만 가득하여 팀장님께 인사를 제대로 못 드리고 온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그곳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애도하고, 팀장님과 좋았던 기억을 잘 정리해봤어야 했는데, 그러고 마지막 인사도 잘 건네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요 며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팀장님의 좋았던 모습을 다시 떠올려 정리해보고, 인사도 다시 드려볼까 싶어서.
50을 넘긴 연세이셨음에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남자 둘이 사랑하는 영화를 보고 오셔, 점심을 먹으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시고, 별다른 의도 없이 "민규 씨는 남자한테 호감 갔던 적 없어?"라고 묻는 팀장님이 좋았다. "음. 딱히 그랬던 적은 없어요"라는 내 대답에 대수롭지 않게 "그렇구나" 하고 마는 팀장님이 좋았다. 그러면서 주말에 딸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레즈비언 친구를 집에 데려온 이야기로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시는, 많은 것들에 열려 있는 팀장님의 마음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단단히 빠지셨는지, 젊은 사람도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를 티모시 샬라메 같은 신예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으며 '덕질'하시는 모습과 내가 먼저 티모시 샬라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눈이 반짝하시며 즉각 '덕후 모드'로 돌입하시는 모습도 좋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를 똑같이 좋아하고 계셨던 점이 좋았고, 좋게 읽으신 책을 본인의 책상 뒤 책꽂이에 꽂아두고 언제든 가져가 읽으라 하신 점도 좋았다.
업무적으로도,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자신의 방향을 강요하지 않고, 얼마 안 되는 경력을 가진 팀원들의 의견도 세심하게 들어 반영하시는 점이 좋았다. 보고서나 기획안을 써 컨펌을 받을 때도 팀장님께서 지시한 방향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 정답이 맞는지 검사받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나란히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렇게 강압적이지 않으시면서도 마냥 푸근하시지 않고 단호할 때 단호하고, 냉정할 때 냉정한, 필요한 순간에 엄격하신 모습이 좋았다. 남모르게 본인의 손해를 감수하며 회사에 우리 팀원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셨던 것도 좋았고, 팀 내에 좋은 성과로 축하받을 사람이 생기면 꼭 꽃 한 다발을 사 선물하시는 것도 좋았다.
좋았던 기억을 쭉 이어서 쓰고 보니 슬퍼지기도 하고, 그리운 마음도 들고 하는데, 남은 사람은 먼저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단정하고 예쁘게 정리해 오래도록 기억하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함께한 시간이 짧았음에도 팀장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아주 많다는 것, 또, 퇴사하신 뒤부터인 지난 2년간에도 연락을 종종 주고받았으며, 찾아뵙고 함께 식사한 기억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추석, 팀장님께서 내게 먼저 안부를 물으시며 나에 대해 "함께한 시간이 그리 오래진 않은데, 이상하게 오랜 친구 같은 그런 편안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져"라고 말씀 주신 적이 있는데, 나 또한 팀장님과 정확히 같은 마음이다. 왜인지 편안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마음이 많이 갔던 팀장님께 이제, 이 글의 말미를 빌려, 못다 한 말 몇 마디를 건네볼까 한다.
팀장님. 이 글을 쓰며 팀장님과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와 사내 메신저로 주고받았던 업무 메시지도 모두 다시 읽어봤는데, 눈물 꽤 흘렸습니다. 어디 보는 사람도 없어서 이번에는 맘 편하게 울며 팀장님과의 좋은 기억들을 글로 정리해볼 수 있었네요. 너무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이렇게 자질구레한 눈물 정도 보여야 팀장님께서도 흐뭇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팀장님. 어딘가 기계적이고 차갑게 느껴지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의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나, 이 글을 다시 들춰볼 때나, 여러 가지의 때에 팀장님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한 마음, 그리운 마음 모두 모아 장례식장에서 모자라게 드렸던 인사 다시 드려봐요. 팀장님. 먼저 가신 그곳에서 편안하고 따뜻하게 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안녕히 가신 곳에서,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