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떠드는 글
한때 나는 춤꾼이었다
한때 나는 춤을 잘 췄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21살 이후로 어디에서도 춤을 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춤을 춰보라고 한다면 여전히 꽤 잘 추리라 생각하지만, 주책스럽게 한바탕 춤을 춰 재낄 의사가 딱히 없기에 내 삶에 춤은 과거형으로 묻어두고자 한다.
춤추는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 춤을 배운 적이 전혀 없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들 안무를 휙 보고 따라 하면 거의 똑같이 춰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춤 잘 춘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져 중학생 때부터는 장기자랑에 나갈 일이 있으면 내가 꼭 나가서 춤을 추곤 했다(나갔다 하면 항상 1등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연말 축제 두 번, 수학여행 장기자랑 한 번, 세 차례 무대에 서 춤을 췄다. 특히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에서 제주 무슨 무슨 예술관과 연합으로 치러진 장기자랑 시간에 춘 춤은 제주도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무대를 뒤집어 놓았다고).
그러고 보면 10대 때 내 성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굳이 먼저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누가 등 떠민다면 마다하지 않고 "그래. 내가 나서볼게" 하는 정도의 나대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누가 판만 깔아주면 작정하고 나가 춤을 진심으로 춰댔다(의상도 진지하게 골라 갖춰 입고 췄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이런저런 인생의 시련을 겪으며, 세상에 얻어맞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니 성격이 변했다. 의연함을 넘어 초연해진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지나치게 차분한 태도를 가지게 되어, 이런저런 부산스러운 것들이 다 싫어져 21살 이후로는 도무지 춤을 추지 않았다.
선택한 대학교 전공도 정적이기 짝이 없어 춤은 고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일도 딱히 없었고(하긴 무용과가 아니고서야 어떤 학과에서 학과 생활 중에 춤출 일이 있겠냐마는), 사회에 나와서는 책 만드는 편집자가 됐으니 독서실과 다름없는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 춤 잘 추는 나의 재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간 지 오래다(마찬가지로 JYP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고서야 어떤 회사에서 회사 생활 중에 춤출 일이 있겠냐마는).
소외된 재능에 대한 생각들
잊고 있던 춤이 나의 일상에 다시 화두가 된 이유는 아주 오랜만에 연락하게 된 한 친구와의 대화 때문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나를 발견해 팔로우 신청을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할 기회가 없었던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아 카톡으로 옮겨와, 지난 세월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그간을 열심히 따라잡았다.
한창 대화 중에 뭘 하며 먹고 사냐는 친구의 말에 책 만드는 편집자로 일한다고 답했더니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친구는 내게 "나는 너가 춤으로 성공해 있을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별안간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가 '아. 그 시절엔 내가 춤을 잘 췄었지. 아주 잊고 있었네' 하는 생각이 스쳤다.
친구에게는 "나 춤 끊은 지 오래야ㅋㅋㅋㅋㅋ"라며 웃고 말았지만, 대화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문득 나의 소외된 재능에 대한 시시콜콜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물론 내가 방탄소년단 지민 씨 같은 천생 춤꾼도 아니고, 어디 유명한 대회에 나가 춤으로 입상한 것도 아니니 이런 생각은 몹시 겸연쩍은 것이지만, 어쩌면 내 안에 춤이라는 재능이 그리 깊지 않은 곳에 묻혀 있었는데, 원석을 가공해보기는커녕 밖으로 파내 보고자 한 의지도 없었나?
어떤 기회로 그것이 끄집어내어 지고 가공되었다면, 장기자랑에 나가 춤추는 정도가 아니라 어디 댄스 아카데미라도 진지하게 등록해 다녔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 무대에 올라 춤추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을까? 확실히 그냥 묻어 두고 없는 셈 치기는 아까운 재능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때 내가 이 재능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면, 국어나 영어 말고 다른 것을 공부해도 괜찮다는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때, 내가 무슨 재능을 가졌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유일한 길처럼 여겨졌던 수능에만 골몰했던 게 문득 안타깝고 아쉽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우리는 멋모르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고, 그렇게 멋모르고 결정한 것들의 연쇄작용으로 남은 삶을 쭉 이어가는 것도 같다. 내가 가진 재능을 소외시킨 채 적성에 맞든 안 맞든 수능 공부를 하고, 수능 날 하루 문제 푼 결과로 나온 성적에 맞춰 선생님이 추천해 주는 학교에 전공에 등등. 그런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떨 때는 '나도 나만의 것을 잘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라도 빛나게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
누구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반짝거리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인식하지 못해 보여지지 않거나, 사는 게 너무 바쁘고 지쳐 꺼내 볼 기회가 마땅히 없을 뿐. 가만히 있어도 반짝이는 재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런 운 좋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 싶다.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재능은 서른 살에, 마흔 살에, 일흔 살에 찾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묻어 뒀던 것들을 어느 날 갑자기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는 이제라도 내 안 깊숙이 묻힌 재능을 밖으로 꺼내 갈고닦아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다시 신명 나게 춤을 추겠다는 결론은 물론 아니다. 춤은 과거형이 되었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은 나의 또 다른 재능을 갈고닦아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그런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나의 재능이 글쓰기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린 나이었으니 당연한 것일 테지만, 10대 때의 나는 부모님이, 선생님이 시키는 것들 말고 다른 것을 찾아봐도 괜찮다는 용기와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더하여 다른 것을 찾아 도전해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 또, 거기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력도 (소소하게) 갖게 됐다.
내 나이대에 으레 방해가 되는 것들이라면 '이 나이에 무슨 잠재된 재능 타령이냐 살던 대로 살자', '나랑 같은 나이에 이미 저만큼 이룬 사람도 있는데, 나는 너무 늦었지' 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런 마음들만을 유의하며 나는, 나의 깊은 곳에 묻힌 재능을 바깥세상으로 꺼내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질 정도로 빛나게 만들어 보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말 한마디에 이어진 시시콜콜한 생각들이 자못 결연한 다짐에까지 이르게 됐다. 아무튼, 춤추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떠드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은 될 수 있게 오랜 시간 꾸준히 품을 들여 잘해보아야겠다. 복잡하고 피곤한 세상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잘하고 싶은 것을 잘해보고자 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Photo by Aleks Dahlberg from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