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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편지 Sep 13. 2018

칼퇴근이 어려운 이유 #2

위계에 의한 한국조직에서 팀장되기


문제의 출발


일터에서 새로운 역할로 팀장이 되고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노동강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주어진 일과시간에 업무를 처리하고 칼퇴근 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던 내가 칼퇴근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늘어난 업무로 노동강도가 높아져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 보다 더 힘든 건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는 이 상황이 내가 팀장병에 걸린 결과인지 구조적인 압력에 의한 문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칼퇴가 어렵다.

기계적 분업 체계의 결과


팀별 체계를 택하고 있는 나의 일터에서 팀장은 파트별 사업에 대한 기획과 집행계획을 세우고, 팀원과 세부 기획 및 실무를 논의하여 분담한다. 주제별로 사업파트를 구분하고 팀 리더와 팀원의 역할을 나누어 효과적인 사업집행을 꾀하는 것이 골자이며 분명한 분업체계이다.

어떤 이는 사회적 이슈나 복지, 정책, 제도 등을 다루는 비영리 영역에서 전인적으로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고 세부적인 분업체계와 시스템에 집중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분업'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며 전반적인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다면 분업체계에 대한 유기적인 운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분업이 유기적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사업파트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는 것은 사업에 대한 권한 또한 그 내용에 맞게 나눠져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조직 내의 권한과 내용이 구성원들에게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고, 유기적인 소통이 어려울 때  그 조직의 열정은 팀장급 이상 '상급자 회의'를 하는 데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A부터 Z까지 세세한 모든 사안을 상급자 회의에서 다루려 하고 실제로 집행되는 내용보다 회의 내용은 비대해진다.


팀장이든 팀원이든 이 상황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팀장은 장시간 회의를 마치고 회의하느라 처리하지 못한 업무 하느라 야근을 한다. 팀원은 팀장이 회의 하느라 논의 못한 일들을 처리하고 결정사항들을 확인하려고 대기 한다. 불필요한 회의시간에 잡아먹힌 하루는 기를 쓰고 집중하느라 배가 고프고 마음은 헛헛하고 말을 많이해 손은 미세하게 떨린다. 이런 긴장과 업무밀도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다. 뱅뱅 도는 노동사이클 안에서  "그래, 그래도 결정하는 어떤 권한이 나에도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하고 다짐하는 나를 보면 '노오력이 부족해' 하는 멘트와 무엇이 다른지 답답한 노릇이다.



칼퇴를 하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 권하는 조직


바쁜 시기에 야근하고 안 바쁜시기에 칼퇴하는 것이 미덕이자 노동윤리로 여겼다. 그런데 팀장이 되고 나서는 자꾸 6시 땡하고 퇴근할 타이밍에 사무실 책상에 미련파고 앉아 있는다. 솔직히 말하면, 눈치가 보인다. 여기서 눈치가 자발적으로 한 번, 강압적으로 또 한 번 보인다는 점이 핵심이다.


자발적인 눈치는 그런거다. 회의나 업무 자체가 늘어나기도 했고, 나의 업무 계획과 더불어 팀원의 업무 진행까지 파악해야 하는데 이전에 해본 일이 아니다 보니 우선 순위 없이 업무를 붙잡고 있는다. 괜히 업무 서류같은 거 뽑아서 집에 가져가는 쓰잘데기 없는 짓도 해본다.


강압적인 눈치는 그런거다. 사실 5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며 내 안에 생긴 나름의 원칙들이 있다. 그런 원칙들은 말해주고 있다. "야.. 미련파지 말고 오늘은 여기까지" 그런데 나는 이 원칙들을 잘 알면서도 다소 '강압적인' 눈치를 본다. 안그래도 추가된 업무들로 쪼그라든 간뎅이가 '조금 더 앉아 있어봐' 하고 나를 붙잡는다. 이것 저것 정신도 없고 내부 승진으로 팀장도 되었는데 이전처럼 일찍 일찍 퇴근하면 조직에서 성의 없어 보일까봐 밍기적 밍기적 하면서 업무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다. 이전에는 그냥 내 일 속도에 따라서 내가 선택해서 더 일하다가 퇴근할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이런저런 눈치와 바뀌지 않는 업무 패턴으로 집에 못 간다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나의 노동속도를 누군가 뒤흔드는 것 같다.


한국 조직에서 야근 많이 하는 사람들...장시간 노동으로 조직에 희생적인 기여도가 있다고 여겨지는 캐릭터들을 신뢰한다. 이런 장시간 노동 좋아하는 조직 분위기가 '강압적인' 눈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새로운 역할로 조직에서 인정 받고 싶은 나는 이런 저런 눈치를 나도 모르게 많이 봐 왔고, 실제로 야근을 하면서 교환되는 업무 정보를 보고 압박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억울함

분노보다 지독한 억울함


지금까지 나의 일터 고민은 나이가 어리고 호봉도 낮은 20대 노동자들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그에 따른 임금과 역할상승을 보장받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실제로 조직에서 '나이' 어리고 비혼으로 '가부장'에 속해 있지 않으며 평직원이어서 '관리자'도 아닌 노동자들의 권리가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졸업 이후, 나의 노동경험은 20대 비혼 여성으로 겪는 조직의 부당한 위계가 고스란히 나의 임금수준과 노동과정에 반영되는 것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늙은 노동자들의 나이브한 태도는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마저 잊게 할 정도로 분노 그 자체였고, 현실적인 장벽이었다.


'나이주의' '가부장' '기계적인 분업과 소통' 등 조직 안의 부당한 위계들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는 팀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내심 역할의 변화로 지금까지의 문제의식들이 잘 풀릴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의 개별적인 역할 변화는 조직의 누적된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었고 오히려 나에게는 기존 위계의 새로운 측면을 더 크게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해답은 조직 자체의 변화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 안의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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